푸꾸옥표지

Day 1 - 도착 (12월 31일 수요일)

1일차프롤로그

한 해의 마지막 날, 우리는 따뜻한 겨울 나라 푸꾸옥으로 날아갔다. 공항 주차장에서의 어처구니없는 길 찾기로 시작된 하루는 놓친 셔틀버스의 아쉬움과 수다스러운 베트남 기사와의 엉터리 영어 소통으로 이어졌고, 온갖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도착한 805호 풀빌라의 넓은 품 안에서 우리 가족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새로운 여정의 설렘을 동시에 느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의 첫 저녁,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와 뛰어든 수영장, 그리고 배영 자세로 누워 별을 바라보며 멀리서 들려오는 폭죽 소리와 함께 우리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요하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2026년의 첫 순간을 맞이했다.

드디어 휴양지 - 계획의 즐거움

유럽 여행 마지막에 기약했던 휴양지행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한 여름의 유럽여행과 가을의 설악산행에 이어 이번에는 푸꾸옥의 겨울 여행이었다. 물론 말이 겨울이지 베트남은 여름 날씨니까 피한(皮寒) 여행쯤 된다고 해야하나?

휴양지일출

아이들의 학원 스케쥴과 방학 그리고 아내 병원의 휴진 최소화를 종합 고려해서 연말 연시 연휴가 이번 여행의 적기로 최종 선정되었다. 크리스마스 전후로는 학원 수업에 너무 지장이 많아서 새해를 푸꾸옥 리조트에서 맞이하기로 한 것이다.

12월 31일에 출발헤서 1월4일 일요일까찌 4박 5일. 지난 여름 유럽의 11박 여행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기간이지만 아이들 공부에 방해될까봐 어른들이 욕심을 최대한 줄였다. 방학 지나면 소은이는 고등학생이고 송하도 중3이다. 우리 집은 어른들이 더 철부지다.

처음 여행 계획을 발표했을 때, 일단 거부하고 보는 송하의 특기가 1차 발동되었다. "아이고, 집에서 좀 쉬자." 아니면 " 나 그 때 너무 바쁜데..." 였다. 학기말이고 졸업식 등 중요한 학교 행사들이 많아서 학생회 간부로서 할 일이 많다고 걱정을 하는 듯했다.

하지만 또다른 송하의 특기는 일단 여행지에 가면 가장 즐겁게 놀고, 돌아오는 걸 제일 아쉬워 한다는 것. 며칠이 지나 다시 물어 봤을 때의 태도는 벌써 여행에 적극적으로 변해 있었다.

여행 장소가 푸꾸옥으로 선정된 것은 유행에 순응한 측면이 있었다. 인공 지능에게 물어본 대답 결과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발리, 푸켓을 제치고 푸꾸옥이 단연 일등 추천지였다.

우리 가족의 휴양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조건 수영장이다. 비싼 돈을 지불한 호텔을 비우고 허접한 주변 관광지에서 헤매는 따위의 행동은 우리 가족에게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그 경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해져서 우리 가족 여행 초창기에는 짧은 시내 관광도 일정에 포함시켰는데, 보라카이에서의 '디몰(D'Mall) 사건' 이후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보라카이 여행은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함께였다. 그 유명한 보라카이 멤버가 구성된 바로 그 여행이었다. 2017년이니까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떠올릴 때마다 아련하다.

보라카이디몰

'디 몰 사건'은 샹그릴라 리조트라는 역대급으로 멋진 호텔에서 꿈 같은 시간을 보내다가 누군가의 크게 절박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한국 음식 한번쯤 먹어주기' 제안에 대해서 초짜 가이드가 무턱대고 시내로 이끌었다가 모두를 엄청 고생시킨 사건이다.

디몰(D'Mall)은 보라카이 시내의 쇼핑 단지 이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행이 무르익어 갈 무렵 호텔 음식에 약간 질려 간다 싶었는데 , 한국 음식을 한번쯤 먹자는 제안이 있었다. 어쩌면 그냥 나혼자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검색 결과 디몰에 한국식당이 한 두 군데 눈에 띠었다.

문제는 이동하는 교통편이었다. 호텔에서 디몰로는 한 시간에 한번씩 호텔 셔틀 버스가 있는데 저녁 6시와 8시 사이만 두 시간 간격이었다. 호텔 내에서 그냥 저녁을 먹으라는 건지, 셔틀 버스 기사도 저녁을 먹어야 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배차 시간이 절묘했다.

여기서 초보 가이드의 안일한 접근이 어마어마한 문제를 일으켰다.

트라이시클

나는 호텔에서 택시를 불러서 이동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그런데 택시를 타려면 툭툭이를 타고, 제법 먼 호텔 입구까지 가야 했다. 여기까지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택시의 종류였다.

택시가 도착했는데,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일반적인 택시가 아니었다. 창문이 비닐로 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동하는 길이 반쯤 비포장 도로인데, 가다가 거의 뒤집어 질 듯한 불안함을 느끼게 만드는, 딱 봐도 너무 허접한 모습이었다.

# 2017년 무렵 보라카이의 트라이시클은 오토바이 측면에 철근과 나무 등을 투박하게 용접해 만든 좁은 보조 좌석(사이드카)을 연결한 형태로, 노후된 2행정(2-Stroke) 엔진이 내뿜는 심각한 매연과 소음, 그리고 열악한 도로 사정이 그대로 전달되는 거친 승차감을 특징으로 하는 날 것 그대로의 개조 차량이었다. 그러나 2018년 섬 폐쇄 및 환경 정화 작업을 기점으로 트라이시클은 극적인 진화를 맞이했다. 현재 주를 이루는 'E-Trike'는 매연과 소음이 없는 친환경 전기 모터로 구동되며, 외관 또한 과거의 조잡한 개조형이 아닌 처음부터 승객 수송용으로 제작된 널찍하고 네모난 일체형 박스 구조로 6~8인이 쾌적하게 탑승할 수 있다.

심지어 큰 택시 한대로 이동하려 했는데 큰 택시가 없어서 작은 택시 두 대가 왔고, 우리 일행은 두 차로 나뉘어 출발했다. 절정은 가는 중에 소나기까지 내린 것이다.

갑작스런 소나기에 기사는 서둘러 비닐 창을 내렸고, 차는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 위태롭게 흔들렸다. 목적지까지는 이삼십 분을 더 달려야 하는 꽤 먼 거리였다. 나는 숨 막히는 공포와 죄책감 속에서 차체와 일행을 꼭 붙든 채, 그 조마조마한 순간을 숨죽여 견뎌냈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고생은 이제 시작이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검색 결과에만 의지한 채 식당을 찾아 헤맸다. 지칠 대로 지쳐 움직임이 더딘 일행을 이끌고 길을 찾는 일은 버겁기 그지없었다. 일단 가족들을 비 피할 곳에 머물게 하고 혼자 길을 나섰지만, 돌아온 것은 아내의 원망 섞인 하소연이었다.

'우릴 놔두고 혼자 가버리면 어쩌냐'는 그 말에 가슴이 턱 막혔다. 슬리퍼와 샌들 사이로 튀어 오르는 차가운 흙탕물과 빗줄기...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요,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간신히 식당을 찾아 삼겹살에 김치 찌개를 시켜 허겁지겁 나눠 먹고는 숨을 돌렸다. 다행히 돌아올 때는 버스 정류장을 찾아냈고, 호텔 셔틀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라는 교통수단이 그렇게 안락하게 느껴진 적은 아마 그후로 두번 다시 없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 여행 마지막까지 우리는 샹그릴라 호텔 밖으로는 눈도 돌리지 않았다. 우리 아내와 나만의 비밀 격언 ' 괜히 샹그릴라 좋은 줄 모르고 헤매다가 디몰 만난다' 는 이렇게 탄생했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까불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의미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이후 우리 가족의 여행 계획에서 어설픈 관광지 탐방은 완전히 제거되었다.

베트남지도

휴양인데 관광지 탐방이 없는 여행을 부르는 적절한 용어가 있다. 바로 호캉스. 동남아에서 호캉스 하기 좋은 지역을 묻는 나의 질문에 인공 지능들(chatGPT, Gemini, Claude 등)은 이구동성으로 푸꾸옥(Phuquoc)을 추천해 주었다.

비행시간 다섯 시간에 최근에 본격 개발되기 시작해서 신상 호텔이 많고, 베트남의 다른 휴양지인 다낭이나 나트랑보다 남쪽에 있어서 겨울에도 수영하기 적당한 날씨. 다낭은 겨울에 물에 들어가기엔 약간 춥다고 한다. 다낭은 두번, 나트랑은 한번의 여행 경험이 있어 아직 가보지 못한 장소라는 신선함도 살짝 영향을 주었다.

푸꾸옥을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여전히 북부의 사파리나 빈펄 테마파크, 남부의 케이블카나 선셋 타운 등 때문이 아닌가 싶었지만, 일단 호텔 퀄리티가 아주 좋아 보였다.

푸꾸옥리조트지도

유튜브와 인공지능, 검색 엔진을 총동원해서 호텔 탐색.

푸꾸옥은 남북으로 긴 섬이라서 북쪽 끝에서 남쪽 까지 거의 한시간반 거리인데 바닷가에 대한 평판 측면에서 남부가 압도적으로 우위였다. 몰디브, 보라카이 만큼은 아니어도 베트남에서 가장 좋은 바닷가라는 말에 남부가 가장 끌렸다. 남부의 호텔들 중에는 서너군데가 후보로 눈에 띠었다.

럭셔리함을 고려하면 압도적 1위는 리젠트(Regent) 호텔이었다. 객실료가 차원이 다르게 비쌌다. 그런데 오히려 빈 객실은 더 찾기 어려웠다. 여기도 무슨 '명품 시장 원칙' 같은게 적용되는 건지... 쩝... 패스.

JW메리어트와 프리미어 빌리지, 뉴월드 리조트 등이 최종 후보로 경합을 벌였다.

우리가 가는 날짜가 연말연시라서 항공권이 걱정됐다.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니, 다행히 대한항공편이 보였고 베트남 저가 항공사와 제주 항공 등 국내 저가 항공사 편도 몇 눈에 띠었다. 전에는 몇 번 저가 항공사를 이용한 적도 있었는데, 제주항공 사고 이후로는 영 내키지 않아서 가급적 대한항공을 위주로 알아봤다.

지난번에는 단순히 일정만 변경하는데 수수료가 너무 비싸서 네이버 고객센터, 여행사 등과 실랑이를 벌였다. 응대 태도에 맘이 상해서 결국 소비자 보호원에까지 이르렀는데 인당 겨우 3만원인가 환불 받고는 포기했다. 그것도 무슨 위로금 명목이었다.

# 항공사의 취소 수수료는 정말 너무 심하다. 명칭도 발권 대행 수수료에 항공사 취소 수수료 등등 종류가 한 서너가지 되고 단순히 변경만 해도 수수료가 발생하는데, 정말 너무 까다롭고 부당하게 느껴졌다. no show가 너무 많아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는 하겠지만, 덜컥 구매했다가 일정에 약간이라도 변동이 생기면 인당 10~20만원은 훌쩍 날아간다. 우리처럼 네 식구면 바로 100만원에 육박하는 손해가 발생한다.

또다시 실랑이를 벌일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내 사전에 변경은 없다'는 각오를 다지며 아내 병원 일정을 철저히 확인한 후에 신중하게 항공권을 구매했다. 드디어 항공권을 구매했으니 이제 한가지 큰 고비를 넘은 셈이지만 젠장... 이게 오히려 족쇄가 되었다.

생각보다 호텔 객실 확보가 만만치 않았다. 호텔스 닷컴이니 아고다니 호텔 예약 사이트를 모조리 뒤졌는데 그 며칠 사이에 맘에 드는 객실들은 매진 행렬이었다.

용케 프리미어 빌리지 객실이 하나 있었지만 비싸고 큰 방이라서 4박에 거의 천만원에 육박했다.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다는 JW 메리어트는 호텔 자체가 어떤 학교를 개조한 것처럼 연출이 되어 있어 특이하기는 하지만 너무 조잡해 보여서 우리 가족 취향은 아니었다.

아예 다른 곳으로 갈까 싶기도 했지만 이미 늦었다. 항공권을 미리 예약 안 했으면 다른 휴양지에서 대안을 찾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졸지에 발목이 잡히고 만 셈이다. 며칠을 뒤지다가 뉴월드 리조트에서 간신히 객실 하나를 찾았다. 아침 저녁 부지런을 떤 덕분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프리미어 빌리지가 더 맘에 드는 것 같았다. 나도 첨에는 거기 약간 끌렸는데 산 위에 지어진 호텔이라 이동할 때 힘들다는 평이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가 아니라서 힘든 것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왠지 조금 쓸쓸한 기분이 느껴져서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 가격도 더 저렴하고 풀빌라 객실이 멋져 보이는 뉴월드에 5백만원 전후 가격의 객실을 확보하고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칭찬 받으리라 기대하고 아내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했는데 처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생각보다 프리미어 빌리지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았다. 뜻하지 않게 뉴월드 리조트 홍보대사라도 된 듯이 이것저것 설명했더니 아내 반응이 조금씩 변해가는게 느껴졌다.

성격상 장점도 분명히 작용한 것 같다. 아내는 후회가 적은 사람이다. 일단 결정하고 나면 태도가 급작스럽게 긍정적으로 전환되고 뒤를 잘 돌아보지 않는다. '이럴걸~ 저럴걸~' 하는 경우가 보통 사람들보다 현저히 적다. 우리 아버지가 보셨다면 아주 좋아하셨을 성격이다.

뉴월드리조트야경

이제 항공권과 호텔 예약이 끝났으니 여행 계획의 9할은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식당들 조금 살펴 보고 마사지 샵 조금 알아 보면 나머지는 걱정할 일이 별로 없어 안심이었다.

푸꾸옥사파리

마지막까지 세계에서 두번째로 크다는 인공 사파리를 두고 약간 고민했는데 호텔에서 이동거리가 한시간이 넘는다는 말에 아이들도 순순히 포기했다.

아내는 '아이들 데리고 다녀와. 난 호텔에 있을테니' 라면서 완강히 거부했다. 아이들이 워낙 동물을 좋아하니까 한번 보여줄까 싶었지만 그 또한 내 착각이려니 하면서 사파리는 아예 깨끗이 잊어버렸다.

# 푸꾸옥 북단에 위치한 베트남 최대 규모의 반야생 동물원 '빈펄 사파리'는 자연 상태에 가까운 환경에서 동물들과 교감할 수 있는 곳이다. 베트남을 넘어 동남아시아 최고 수준의 시설과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은 산책하며 즐기는 '오픈 주'와 특수 버스에 탑승해 호랑이, 사자 등 맹수들이 자유롭게 활보하는 구역을 탐험하는 '사파리 파크'로 나뉘어 다채로운 경험을 선사하며, 특히 직접 먹이를 줄 수 있는 기린 식당이 인기가 높다. 단, 사파리는 섬 북쪽에 위치해 있어 남부의 뉴월드 리조트에서 출발할 경우 차량으로 약 50분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되므로 남부에 머무는 여행객에게는 하루 일정을 희생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출발 며칠전에 확인해 본 공항 주차가 약간 변수였다.

얼마 전부터 인천공항 서비스가 조금 이상해졌다 싶었는데, 3년쯤 전에 사장이 바뀌고 평가 등급이 1년만에 A에서 C로 급전직하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정확한 원인이 뭔지, 사장과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언제부턴가 공항 주차대행 예약까지 너무 어려워졌다.

세븐주차대행

세상에 항공권도 아니고 무슨 주차장 예약이 이리 어렵나? 출발이 일주일 이상 남았는데 공식 주차대행은 벌써 매진이었다.

단기 주차장에서 주차 공간 찾느라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해서 택시를 탈까도 생각했는데, 사설 주차대행 서비스 쪽에 좋은 대안이 있었다. 약간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평가가 나쁘지 않고 규모도 있어 보여서 과감하게 세븐주차대행이라는 업체를 예약했다.

비록 출발 당일에 약간의 해프닝은 있었지만 응대하는 분들이 모두 아주 친절해서 불만이 거의 없었고 오히려 공식 주차대행보다 가격이나 서비스가 더 나은 것 같았다.

출발과 도착

이번 여행의 출발 시각은 지난 여름 유럽여행의 출발시간보다 20분 빠른 오전 10시였다. 지난번에도 한시간만에 거뜬히 도착했으니 출국 수속 시간 등등 고려해도 오전 6시 출발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더 빨리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번에도 성화였다.

잘 일어나지도 않는 녀석들이 의욕은 항상 충만하다. 특히 아침에 가장 못 일어나는 송하가 또 빌 '공(空)'자 '공약'을 남발했다. "난 밤 샐거야. 그러니까 5시반에 출발하자."

그런 약속이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간절한 설득 끝에 간신히 추가 30분을 확보했다.

주차대행 회사에서 도착 30분전에 연락을 달라고 했는데, 핸드폰에는 출발하자마자 이미 도착 시간을 묻는 문자가 와 있었다. 네비게이션의 도착 예상 시간은 7시 13분이었다. '단기 주차장 지상 3층 서편 154구역' 으로 오면 된다고 안내를 해주었다. 154번을 찾아야 했다.

출발층앞도로

제 2터미널의 154구역...거기서 주차대행 기사랑 교대하는가보다. 이렇게 생각했다.

출발층으로 올라와 기둥 번호를 열심히 살피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아차 하고 다시 출구를 찾는데 생각보다 밖으로 나가는 출구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다시 밖으로 나와 단기 주차장을 찾으려고 했는데 길이 엄청 복잡했다. 한참을 가서 차를 돌려 다시 단기 주차장쪽으로 왔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154번 기둥은 보이지 않았다.

옆에서 아내가 '154번이면 주차장 안으로 일단 들어가야 하는거 아냐?' 라고 얘기를 했는데, 뭐에 홀린 건지 나는 어이없게 주차장 밖에서 154구역을 찾고 있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 154번 기둥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주차장 서편 154 구역이라고 다시 설명을 해주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종종 어처구니 없는 착각을 하곤 한다. 분명히 '주차장 서편 154번'이라고 했는데도 주차대행 서비스니까 당연히 밖에서 주차대행 서비스 기사를 만난다고만 생각하고 주차장 안에서 만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일종의 확증편향인가?

154번기둥

다시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 서편 주차장을 찾고 154번 기둥을 한참 더듬어 기사를 만났다. 어이없이 20분 이상을 헤매서 거의 7시반이 되어서야 차를 인계했다.

아내가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크게 구박은 하지 않았다. 아직 여행 초반이라 대통령 취임 후 언론이 준다는 '허니문 기간'하고 비스무레한 거라고 해야 하나?

로밍, 환전을 미리 해두었고 짐 부치는 스킬도 한결 능숙해져서 바로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매번 가던 푸드코트에 가지 않았다. 공항에 올 때마다 거의 매번 갔었는데, 다들 슬슬 푸드코트 음식이 지겨워진 모양이었다. 나 때문에 헤매서 그런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출국장가는길

비행기 타면 금방 밥을 줄테니 샌드위치로 간단히 때우고 그냥 게이트로 가자는 쪽으로 의견이 일치했다.

그런데 우리 송하가 또다시 잠바주스 생각이 난 것 같았다. 안내판에서 잠바주스를 찾아 보니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 게이트도 이번에는 출국장에서 아주 가까워서 지난번처럼 가슴을 졸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지난 유럽여행 때는 아이들이 게이트에서 엄청 먼 잠바주스 가게 다녀오느라고 게이트 앞에서 갑자기 초조해진 순간이 있었다. 출국장에서는 매사 조금 과민해지는 경향이 있다.

출국장아내

잠바주스 매장에서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아내랑 송하의 기분이 약간 안 좋아 보였다.

무슨 이유였는지 지금은 기억도 잘 안난다. 분위기가 냉랭해 보였다. 돌아와서 왜 그랬었냐고 아내와 송하에게 물어보니 그런 적 자체가 없다고 얘기했다.

나 혼자 무슨 환상? 나도 인공지능처럼 할루시네이션 같은 걸 한 건가? 아마 요즘 인공지능을 너무 가까이 해서 인공지능에게 전염된 모양이다.

잠바주스 매장에도 샌드위치가 있었지만, 볼품 없어 보여서 주스만 들고 스타벅스로 갔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어른스러워지는 소은이가 무난한 음료와 요깃거리를 주문해 줬다.

보통의가족

아침에 약간 헤매긴 했지만, 큰 무리 없이 게이트 앞에서 약간의 여유 시간을 갖고 비행기에 올랐다.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기내 상영 영화를 봤다. 설경구와 장동건, 김희애가 나오는 '보통의 가족'이었다.

# 영화 '보통의 가족'은 성공한 변호사 형(설경구)과 소아과 의사인 동생(장동건), 그리고 각자의 가족이 겉보기에는 안정적이고 모범적으로 살아가지만, 어느 날 두 집안의 자녀들이 저지른 잔혹한 범죄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모든 관계가 균열을 맞는 과정을 그린 심리 드라마다.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수록 형제는 각자의 신념과 도덕 기준, 부모로서의 책임 사이에서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보통’이라 믿어왔던 가족의 모습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 작품은 자식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사회적 정의가 충돌할 때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나약해질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파고든다.

미성년자 아이들을 둔 부모의 처지여서 동질감이 약간 생기는 영화였지만 배우들 연기도 그저 그렇고 무엇보다 결말이 너무 이상했다. 얘기를 왜 하다 마는 건지....

두 형제의 태도가 뒤로 가면서 반대로 변해간다는 발상이 약간 그럴듯 하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한참 전개시키다가 어떻게 수습할지 몰라서 그냥 확 끝내버린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내가 만약 저런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잠시 생각해 보다가 너무 끔찍해서 생각을 멈췄다. 우리 아이들이 저럴리 없는데 쓸데없이 왜 그런 걱정을...하면서 아이들 얼굴을 한번 쳐다봤다.

김희애란 배우는 연기력에 비해서 영화가 잘 안되는 것 같다. 드라마로는 화제를 많이 몰고 다니는 배우인데 영화는 기억나는 작품이 거의 없다.

배우마다 어울리는 장르가 있는 모양이다. 아내에게 최수종도 김희애처럼 그렇지 않냐고 하니까..최수종? 하고는 더 이상 얘기를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 김희애와 최수종은 드라마에 비해 영화에서 존재감이 약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며, 이는 연기력의 문제라기보다 커리어가 철저히 TV 드라마 중심으로 형성된 때문이다. 김희애는 〈아들과 딸〉,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로 1990년대 국민 여배우로 자리 잡은 뒤, 〈완전한 사랑〉, 〈남편의 여자〉, 〈아내의 자격〉, 〈밀회〉, 〈부부의 세계〉까지 세대를 관통하는 히트작을 남겼고, 최수종은 〈질투〉, 〈첫사랑〉으로 멜로드라마 스타로 인기를 얻은 뒤 〈태조 왕건〉, 〈해신〉, 〈대조영〉 등 대형 사극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국민 사극 배우로 굳혀졌다. 반면 두 배우 모두 영화 출연작 자체가 매우 적고, 일부 작품도 흥행이나 화제성 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해 영화보다는 드라마 배우로 더 강하게 인식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다섯시간반이 아주 짧지만은 않아서 조금 눈을 붙여야겠다 싶었는데, 잠이 잘 오지는 않았다. 와인을 두세잔이나 들이켰는데도 얼굴만 뜨끈하고 잠이 잘 들지 않았다.

푸꾸옥 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찾는데 생각보다 꽤 오래 시간이 걸렸다. 호텔 셔틀버스 시간이 촉박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지나 버렸다. 우리는 2시 도착인데, 셔틀버스는 3시 출발이었다. 셔틀 버스가 한시간반 정도 간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다음 시간까지는 너무 멀었다. 작은 공항이니까 입국 수속에 1시간이면 되겠다고 안일하게 생각한게 문제였다.

공항 입구는 어수선했다. 택시 기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호객을 하고 있었고, 호텔에서 내 이름을 들고 서 있기로 해서 혹시나 하고 찾아 봤지만 역시나 없었다. 3시에서 10분쯤 지난 시간이었고 칼같이 출발해버린 것 같았다. 여러 사람이 탑승하는 거라서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안내 메일에서 문구를 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 서운했다.

푸꾸옥고스트

'푸꾸옥 고스트'라고 한글로 쓰여진 부스 같은게 보였다. 여행 전에 푸꾸옥에 관련된 정보를 찾다가 눈에 익은 업체였는데, 반가웠다.

다짜고짜 한국말로 혹시 셔틀버스 이용할 수 있냐고 물었는데, 정확히 뭐라 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더듬거리는 한국어로 '미안하지만 곤란하다는 의사표현'을 한 것 같았다.

그랩

그랩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베트남 등 동남아에 가면 택시 탈 때 이용하라고 안내를 받았고, 한국에서 미리 결제 정보까지 등록해 두는 부지런을 떨었다.

목적지를 뉴월드 리조트로 입력하고 기다리는데 금방 배차가 됐다. 기사 얼굴이 나오고 차 번호도 뜨는 게 카카오 택시랑 메뉴도 비슷하고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 후 그 기사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는 옆에 있던 다른 한국인들과 뭐라 얘기하더니 그냥 그 사람들을 데리고 가 버렸다.

급히 불렀는데 우리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휙 가버렸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꽥 소리도 못하고 당하고 말았다. '와 이걸 새치기?'하며 당황해서 멍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주 날렵해 보이는 사람 하나가 다가와서는 어디로 가는냐고 물었다. 뉴월드리조트 간다고 했더니 자기가 갈 수 있다고 했다. 얼마냐고 물으니 8달러라고 했다. 그랩보다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랩을 다시 부를까 하다가, 에라~ 그냥 한번 가보자 하고 따라 나섰다.

그래도 약간 불안해서 어떤 차냐고 물었다. 차 사진을 보여주는데, 나름 근사해 보였다. 자기 차 둔 곳을 까먹었는지 약간 헤매기는 했지만, 잠시 후 무사히 차를 찾아서 짐을 싣고 호텔로 출발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엄청난 혼란과 고통이 시작됐다.

영어는 엄청 짧은데 말이 아주 많았다. 한참을 뭐라고 하는데 구글 번역기로 해도 잘 안되고. 서로 얘기는 많은데 의사소통은 잘 안되는 아주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랩에서 연락이 왔다. 지금 공항에 도착했는데 어디 있냐고 물었다. 허걱~~~ 순간 아찔해졌다.

아~ 내가 착각한건가? 아까 그 사람이 아니었나? "미안하다. 다른 차를 이용 중이다." 라고 답을 보냈다. 그런데 계속 연락이 와서 뭐라고 얘기를 했다. 그런데 옆에 탄 기사가 또 뭐라고 계속 떠들고... 뒤죽박죽 정신이 완전 혼비백산이 되었다.

나는 한꺼번에 두가지 일을 잘 못한다. 여자와 남자의 멀티태스킹 능력은 원래 현저한 차이가 있어서, 보통의 여자들은 TV 보면서 전화 통화하면서 뜨개질하고 차도 능숙하게 마시지만 남자들은 그런 상황이 되면 바로 멘붕에 빠진다고 한다.

멀티태스킹

# 흔히 여성의 멀티태스킹 우위에 대한 통념이 있고 실제로 2013년 영국 글래스고 대학 연구(BMC Psychology 게재)는 여성들이 특정 태스크 스위칭 테스트와 실생활 시뮬레이션(예: 탐색+계획)에서 남성보다 우수한 성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9년 독일 Hirsch 등의 연구(PLOS ONE 게재)는 태스크 스위칭(task switching)과 듀얼 태스크(dual task)에서 남녀 간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뇌 과학적으로 인간의 뇌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빠르게 주의력을 옮기는 '태스크 스위칭'을 수행할 뿐이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지적 과부하인 '전환 비용(switching cost)'은 남녀라는 성별의 차이라기보다 한 가지에 깊이 몰입하는 개인의 인지 스타일 차이에서 기인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나는 그런 점에서도 하위 10%에 속하는 수준이다. 지금처럼 이런 작업을 하거나 뭔가에 집중해 있는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 얘기를 거의 듣지 못한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많이 듣는 구박을 회사 사람들에게도 최근에 들었다. 확실히 나는 멀티태스킹 능력이 아주 열악하다.

그런 나에게 두 사람이 외국어로 떠드는 상황은 거의 최악의 도전이었다.

그랩취소

간신히 정신을 차려 그랩 기사의 요구 사항인 취소 버튼을 찾아내 취소에 성공한 다음, 옆에서 계속 떠들고 있는 사람의 요구 사항에 집중했다. 급기야 이 '수다쟁이'는 도저히 안 되겠는지 아예 차를 길 옆에 세우기까지 했다.

내 폰을 아예 가져가서 카카오로 뭔가를 막 하더니 됐다고 만족해 했다. 각자 언어로 얘기하면 자동으로 번역이 되도록 대화방을 만든 게 그 사람이 그토록 애타하던 작업 목표였다.

푸꾸옥기사톡

으이그~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수다쟁이는 그 이후로도 운전을 하면서 핸드폰을 계속 만지작거리고 뭐라고 쉴새없이 떠들었다.

결론은 푸꾸옥에 좋은 볼거리가 많으니 자기가 소개해 줄 수 있고 어디 갈 때 자기에게 꼭 연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사고 날까봐 약간 겁이 나서 운전 조심하라고 했더니, 고맙다고 하고는 그제서야 약간 조용해졌다.

아내는 그 사람이 맘에 들었는지 "나중에 호텔에서 공항 갈 때 부르면 되겠네." 했다.

하지만 귀국 길에는 호텔에서 셔틀버스를 예약해서 무사히 탔고, 괜시리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지만 관광에 일체 관심이 없던 우리가 그 사람을 다시 볼 기회는 없었다.

통행료까지 해서 9달러를 받았다. 10불을 주면서 거스름돈 1불은 팁으로 준다고 했는데 기어이 주머니를 뒤지더니 1불을 내줬다.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거였을까?

약간 산만하기는 했지만 아주 바지런하고 정직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베트남에 대헤서는 약간의 짠한 마음이 있다. 다른 동남아 나라들보다 늦게 개발을 시작했지만 가장 의욕적이고 한국에 대해서도 부러워하고 배우려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나목책표지

박완서의 나목(裸木)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한국전쟁 중에 미군부대에서 일어나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로 화가 박수근을 모델로 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 아버지와 일본 이모의 모습을 떠올렸다.

우리 아버지는 황해도 출신의 실향민인데, 월남하는 과정에 총상을 입고 구출되어 치료 받은 인연으로 나중에 미군부대에도 근무하셨고 거기서 결혼 후에 우리 이모와 같이 일도 하신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다. 전쟁 직후 궁핍한 상황에서 미군부대라는 풍족한 공간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 보려는, 생활력 강한 두 분의 눈물 나고 처절한 무용담들은 나목 속의 등장인물들을 연상시키는 스토리였다.

전에도 베트남에 올 때마다 아버지랑 이모의 젊은 시절을 연상시키는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 정많고 정직한 수다쟁이 기사가 첫 등장 인물이었다.

봄을기다리는나목

# 박완서의 데뷔작인 『나목』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 초 서울, 미군 부대 PX(매점)를 배경으로 혹독한 시대를 견디는 인간 군상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이경은 미군 초상화부에서 일하며 화가 옥희도를 만나게 되는데, 실제 화가 박수근을 모델로 한 옥희도는 예술가로서의 자긍심을 잠시 접어둔 채, 가족의 생계를 위해 미군들에게 보여줄 유치한 초상화를 그리며 묵묵히 전쟁의 폐허를 살아낸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삶을 지탱하려는 인물들의 모습은 비극적이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작품의 핵심 상징인 '나목(벌거벗은 나무)'은 이경이 옥희도의 화폭에서 발견한 소재로 잎을 모두 떨구고 삭풍을 견디는 그 나무는 언뜻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봄의 싹을 틔우기 위해 겨울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중인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한다. 이는 궁핍하고 어수선한 시대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일구어냈던 우리 부모님 세대의 초상과도 닮아 있고, 베트남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바지런한 모습과도 그 결을 같이 한다.

호텔에서의 첫 밤

뉴월드리조트체크인카운터

드디어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로비는 수수한 편이었다. 흔한 웰컴 드링크도 없고 로비 카운터도 조촐했다.

한동안 엉터리 영어에 질려서인지 안내를 해주는 직원의 영어 실력이 새삼 유창하게 느껴졌다. 태블릿을 펼쳐서 친절하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집중도 잘 안되고 빨리 방에 가고만 싶었다.

한참의 설명이 끝나고 우리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더니 한명씩 얼굴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호텔에 있는 내내 그 촬영한 사진을 어디에 쓴 건지는 알기 어려웠다. 식당에서 룸 차지(Room Charge) 할 때 내 얼굴을 확인하려 했던 건가?

셔틀버스시간표

셔틀 버스가 선월드 혼톰 케이블카, 키스 오브 더 씨라는 공연장, 키스 브릿지 등이 있는 선셋 타운 지역과 프리미어 레지던스, JW 메리어트, 라 페스타 등 인근 호텔들로 운행한다고 했다. 참고하라고 시간표도 보여줬다.

이 때만해도 선셋 타운 갈 때 한번쯤 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공항 갈 때 한번 탄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희안한 건 아직 방 열쇠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진을 다 찍고 왔는데 사진 촬영장에 우리를 데리고 간 아까 그 직원은 다른 사람들을 응대하고 있었다. 일을 시작했으면 마무리를 해야 할텐데.. 졸지에 방치된 어린아이처럼 어설픈 포즈로 서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 옆에 있는 다른 직원에게 '방 키는 안 주나요?' 했더니....

그제서야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키를 챙겨주고 호텔 앞으로 나섰다. 조금 전에 아내에게 '베트남 젊은이들은 역시 아주 일을 잘해.' 라고 했는데 금방 무색해져 버렸다.

너무 성급한 일반화와 섯부른 판단은 늘 조심해야 한다.

첫버기

신나게 버기를 타고 우리 방을 향해 가는데 역시 리조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걸어서 가면 20~30분은 걸릴 거리였다. 직원이 가다가 해변도 보여주고, 수영장 등 여기저기 시설들과 식당 안내도 해 주면서 호텔 소개에 열심이었다.

베트남에 처음이냐? 다낭 두번, 나트랑 한번, 해서 세번 왔고 푸꾸옥은 처음이다. 등등 상투적인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리조트를 구경했다. 풀빌라로만 이루어진 리조트라서 미국의 어느 시골 마을 분위기 같기도 하고, 살짝 느낌이 새로웠다.

805호

드디어 우리 방에 도착했다. 우리 객실은 805호였다.

아이들이 위 아래로 뛰어 다니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복층 구조에 풀빌라 스타일이라서 공간도 넓고 우리 가족이 묵어본 객실로는 역사상 아마 가장 넓고 쾌적한 곳이 아닐까 싶었다.

첫입수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우리 공주님들은 어느새 수영장에 발을 담그고 계셨다. 참 동작도 빠르시다.

덥고 피곤해서 다같이 풀에 당장 뛰어들까 했지만 배가 너무 고팠다.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 아닌가?

풀에는 일단 요기를 하러 다녀와서 밤에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 방에 있으니까 아무 때나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맘이 편했다. 그런데 막상 이 수영장은 마지막 날에야 겨우 한번 이용했다.

버기를 불러 아까 안내 받은 식당 중 하나인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런데 버기가 내려준 곳은 식당의 입구가 아니고 식당 한복판 같은 곳이었다. 어정쩡했다. 마침 한해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복잡한 장식이 드리워져 있고 부페 테이블 같은 걸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안내해 달라고 말 붙여 볼 만한 사람은 찾을 수가 없었다.

잠시의 방황 끝에 식당을 찾아 들어 갔다. 몸이 너무 피곤했는지 판단력도 느리고 괜히 혼자 시무룩해서 날카로웠다. 아내가 순발력을 발휘해서 많이 헤매지는 않고 식당을 찾아냈다.

첫저녁식사

나중에 매일 주구장창 보게 되는 메뉴를 첫날부터 마주했다. 스테이크에 피자까지 주문을 해서 열심히 먹었다. 음식 맛은 나쁘지 않았고 빵이 특히 맛있었다.

아이들이 미소를 띠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는데,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 가족들은 이럴 때 아빠를 참 많이 도와 준다. 음식 맛을 불평하거나 피곤하다고 투정 부리는 법이 없다. 아내도 내가 조금 고생시켜도 좀처럼 짜증을 내지 않는다.

오기 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12월 31일처럼 특별한 날 당일에 도착하는 여행은 앞으로는 조금 피하는게 좋을 것 같았다. 아직 여행지에 적응이 안 된 상태에서 호텔은 나름대로 뭔가 특별한 행사를 준비하느라 어수선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특별한 날을 즐기기에는 너무 피곤해서 뭔가 조금 아쉬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기 쉬운 것 같다.

특별한 날이라고 특별한 일을 반드시 해야 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 전날 도착했으면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물론 이번 여행에서 우리 가족의 여러가지 상황, 즉 학원 스케쥴과 병원 사정 등을 고려하면 하루를 당겨서 전날 오기는 쉽지 않았다.

첫야간수영

방으로 돌아와서 수영장에 뛰어 들었다.

몸도 제대로 씻지 않고 그냥 들어가서 약간 구박 받을만했는데, 에라~ 그냥 일단 뛰어 들었다. 밤 하늘에 별도 조금 보이고 온 세상이 갑자기 고요했다.

나는 수영장에서 배영 자세로 하늘을 보는 걸 좋아한다. 귀가 물 속에 잠기면 주위도 고요해지고 기분이 아주 평화로워져서 시도 때도 없이 그런 자세를 취하곤 한다. 그래서 얼굴이 더 타나?

새해 첫 날을 야심차게 푸꾸옥에서 맞이하려던 계획은 일단 결실을 맺었다. 물론 푸꾸옥의 풀빌라 안이어서 특별하거나 화려한 느낌은 없었지만 한겨울에 이렇게 따뜻한 곳에서 새해를 맞이하는게 어디인가? 한국은 엄청 추웠다고 하던데...

밤에 바닷가에서 불꽃 놀이가 한창이었는데 가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버기를 타고 한번 가볼 걸 그랬나? 멋진 풀빌라 안에서 멀리 폭죽을 바라보면서 2026년 새해를 맞이했다.

Day 2 - 바다 (1월 1일 목요일)

2일차프롤로그

대망의 새해 첫날. 시차 때문인지 일찍 눈이 떠졌다. 방 창밖으로 내다본 수영장 풍경은 마치 홍보용 사진처럼 완벽했다. 부페에서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향한 바닷가는 처음에는 부드러운 모래와 맑은 물로 우리를 반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본토에서 흘러든 쓰레기 더미가 악취와 함께 밀려들었고, 고급 리조트의 프라이빗 비치가 순식간에 환경 문제의 현장으로 변해가는 광경은 분노와 착잡함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바다를 포기하고 간신히 확보한 수영장 선베드에서, 우리 가족은 V-튜브 하나에 의지한 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끝말잇기로 몇 시간을 녹여냈고, 저녁에는 구글로 직접 예약한 '아난다 스파'에서 마사지를 받으며 여행 둘째 날의 피로와 실망을 조금씩 씻어냈다.

푸꾸옥 바다의 두 얼굴

아침수영장

아침에 조금 일찍 눈을 떴다. 나이 때문인가? 그보다는 아마 한국과의 시차 때문이었을 것 같다. 베트남은 한국과 2시간 차이다. 그러니까 오전 8시면 한국 시각으로는 10시니까 제법 늦잠을 잔 셈이 된다.

날도 화창하고 방에서 내다 본 수영장 풍경이 무슨 홍보용 사진 같았다. 푸꾸옥에서 경험한 것 중 가장 인상에 오래 남을 것 같은 장면 중 하나를 맞이했다. 아이들과 아내가 깨기 전에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잠시 후에 아내와 아이들도 눈을 떴다. 대충 양치질만하고 아침을 먹으러 부페 식당을 찾았다. 어차피 곧 수영할 거니까. 하하. 어제 저녁을 먹은 장소 바로 옆에 부페 식당이 있었다.

조식부페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았다. 1층에 자리가 다 찼는지 객실 번호와 이름을 확인하고는 2층으로 안내해 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내려서 식당에 들어섰다. 규모도 널찍하고 빈자리도 넉넉해서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은 아침 식사를 여유있게 즐겼다.

언제나처럼 나는 샐러드에 계란 후라이, 베이컨, 빵 등등으로 배를 채웠고 아이들은 우아하게 와플에 시럽을 살짝 묻혀서 공주님처럼 식사를 했다. 아내는 오믈렛과 커피, 쌀국수 등등 늘 먹던 음식들을 먹었다. 과일 코너를 슬쩍 지나쳤는데, 반가운 패션후르츠가 많이 보였다.

언젠가 동남아의 한 부페 식당에서... 아마 거기도 베트남이었던 것 같다. 소은이랑 패션후르츠 먹기 놀이를 했었다. 한 접시 담아 와서 이걸 먹으면서 인상을 찡그리는 놀이였는데, 한 접시 담아서 소은이에게 내밀었더니 살짝 웃기만 하고 반응이 예전 같지 않았다.

여중생에게 아빠가 너무 기대가 크다. 그래도 나중에 소은이는 패션 후르츠를 한 두개 먹었고 뜻밖에 아내도 몇 개 즐겼다. 나는 다섯개쯤 먹었고 송하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생각보다 서양 사람들이 많았다. 동남아 관광지 중에는 한국인이 너무 많아서 여기가 한국인지 해외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인 곳부터 중국인과 일본인이 제법 많은 곳 등등 다양한데, 여기는 한국인 비율도 낮은 편이고 동양인 중에 중국, 일본인은 거의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했다. 바로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수영장으로 향하지 않고 휴식 시간을 갖는 건 우리 가족 여행에서 약간 이례적인데 오후에 아무런 일정도 없고 첫 날이라서 살짝 느긋하게 일정을 진행한 것이다. 아이들도 조금 쉴 시간이 필요하다.

수영장전경

드디어 메인 수영장에 도착했다. 선베드를 찾아야 하는데, 수영장 근처에는 빈자리가 하나도 안 보였다.

이건 조금 의외였다. 보통 한국인 비율이 높은 곳에서는 선베드 자리 확보가 쉽지 않다. 특유의 근면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과하다 싶을만큼 선베드 자리 확보에 열심이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반면에 서양인들이 많은 곳에서는 서양인들이 선베드 확보에 그리 열정적이지 않아서 자리 확보가 그리 어렵지 않다. 여긴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 비율이 비교적 낮은데도 벌써 자리가 없었다. 수건만 덩그러니 놓여 있기도 하고 누워서 책을 읽는 사람들 등등 다양했다.

바다 구경도 할겸 겸사겸사 해변 쪽으로 향했다. 그쪽에는 선베드에 빈자리가 많이 있었다. 물이 아주 맑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모래가 부드러워서 해변 퀄리티는 나쁘지 않았다.

아이들은 수영장에 벌써 들어가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나와 아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바다 바람과 바다 내음에 빠져 들어갔다. 방에 두고 온 물건들이 떠올랐다.

옆에서 책 읽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책 한 권 읽고 싶었고, 주문한 '맥주 한 바스켓'에 어울릴 땅콩과 오징어도 생각 났다. 버기를 타고 방에 가서 아쉬웠던 물건들을 다시 챙겨 나왔다.

요즘은 여행 갈 때 땅콩과 오징어를 잔뜩 준비해 간다. 한번은 땅콩을 한 보따리 챙겨 갔는데 송하가 촌철살인을 날카롭게 퍼부었다. "이건 거의 광기?"

땅콩을 가장 아쉬워 하는 건 아내다. 준비할 때는 "그렇게 많이 가져가?" 라고 하지만 막상 양이 모자라면, "에게.. 고것 밖에 안 가져 왔어?" 한다. 그래서 나는 꿋꿋하게 충분히 준비한다.

쓰레기더미1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약간 불쾌한 냄새와 함께 물 위에 뭔가 누런 것들이 떠다니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무슨 나무 줄기와 열매에 각종 쓰레기들이 섞인 물건들이 해변쪽으로 밀려 들고 있었다. 거기서 악취도 나는 것 같았다. 고급 리조트의 프라이빗 비치에 쓰레기 더미라니....

쓰레기더미2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핸드폰을 들고 바닷가를 찍는 사람들. 물속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놀고 있는 사람들. 여러 가지 다양한 군상을 보이고 있는데, 정작 중요한 호텔 직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부터 간부쯤으로 보이는 사람 하나에 직원들 서넛이 어찌할줄 몰라 하면서 무기력하게 쓰레기를 바닷가 쪽으로 느릿느릿 모아 두고 있었다.

쓰레기의 규모나 심각성으로 봐서는 호텔 직원 수백명에 각종 장비가 총동원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너무 대처가 안일해 보였다. 어디서 흘러 온건지 정체가 뭔지 궁금했다.

물론 그 정체가 뭐든지 간에 비싼 돈 주고 바닷가를 감상하러 왔다가 이게 왠 날벼락인지... 간부로 보이는 직원에게 다가가 이게 뭔지 물었더니 본토에서 떠 내려온 거라고 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길래. 자주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거의 매일 이런다고 했다.

# 2026년 1월 1일 전후로 푸꾸옥 남동쪽 켐 비치(Kem Beach) 일대에서 목격된 부유물 더미는 주로 육지에서 유입된 물옥잠(Water Hyacinth)과 나뭇가지, 해초 등이 엉겨 붙은 자연 현상의 결과물이다. 이는 베트남 본토와 캄보디아, 태국의 하천에서 바다로 흘러나온 수생 식물들이 해류를 타고 이동하다가 푸꾸옥 해안까지 도달한 것이다. 특히 11월에서 4월 사이 불어오는 강력한 북동 몬순(Northeast Monsoon)이 해류의 방향을 동쪽 해안으로 집중시키면서, 뉴월드 리조트가 위치한 지역으로 막대한 양의 부유물이 밀려왔다.

기가 막혔다. 이건 완전 사기 수준 아닌가? 쓰레기 해변을 보려고 하루에 수백불짜리 객실을 예약하는 사람이 있을까? 해변 때문에 굳이 남부 호텔을 예약한 나는 더 화가 났다.

호텔의 초기 대처는 많이 실망스러웠다. 조금 더 긴박하게 장비와 인력을 대규모로 동원해야 할 것 같은데 너무 여유로워 보였다. 너무 자주 흔하게 생기는 일이라서 대응할 기운조차 없어져 버린 건지. 직원들보다 여행객들이 오히려 더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것 같았다.

쓰레기대책회의

그렇게 자주 저런 쓰레기 더미가 떠내려 온다면 해변에 밀려 들고 나서 치우지 말고 아예 바다 가운데에 그물같은 거라도 쳐서 해변 가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하는거 아닌가?

# 해변으로 밀려드는 부유물을 그물로 차단하는 아이디어는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1월 푸꾸옥의 강력한 북동 몬순과 하루 2톤에 달하는 막대한 쓰레기 양을 고려할 때 현실적인 한계가 크다. 강력한 파도와 바람으로 인해 차단막이 파손되어 또 다른 해양 쓰레기가 될 위험이 있고, 수평선 미관 저해나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 유지 관리 비용 또한 매우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조트 측이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직접 수거하는 방식은, 비록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라도 변화무쌍한 자연 현상에 대응하며 즉각적으로 깨끗한 모래사장을 회복하기 위한 가장 유연하고 현실적인 관리 방안이라 볼 수 있다.

화도 났지만 착잡했다. 평소에 무심코 버린 쓰레기들이 되돌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약간의 오해가 있기는 했다. 오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중장비도 동원되고 꽤 많은 인원이 몰려 들어서 쓰레기를 치워 나갔다. 여행객들도 꽤 많은 숫자가 같이 쓰레기를 치웠다.

그리고 또 하나, 계절이 지나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뉴월드 리조트가 위치한 섬의 동쪽이 꺠끗해지고 반대쪽 그러니까 섬의 서쪽 바다에 이런 현상이 생긴다고 한다. 거의 매일 저런다는 그 직원의 말은 약간 과장과 탄식이 섞인 표현이 아니었나 싶다.

쓰레기변화지도

# 이러한 현상은 일 년 내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건기 초입인 12월 말부터 1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계절적 특성을 띤다. 2026년 1월 1일 당시에는 하루에만 약 2톤 이상의 쓰레기가 수거될 정도로 이례적인 규모였다. 반면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우기(5월~10월)에는 부유물이 서쪽 해변으로 이동하여, 뉴월드 리조트가 있는 동쪽 해변은 다시 본래의 투명하고 깨끗한 바다 상태를 회복하게 된다.

점심 식사 이후

바닷가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물에 들어갈 수도 없었지만 냄새가 점점 더 고약해져 갔다. 모처럼 바닷가에서 멍 때리며 책도 보고 우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수영장 근처에는 여전히 자리가 없었다. 여기 온 서양 사람들은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진득하기까지 하다. 차라리 한국인인게 나을뻔했다. 한국인들은 관광 다니느라 오후 되면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분들은 관광에도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코리안치킨

차라리 일단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점심 먹으면서 빈 자리를 한번 노려볼 생각이었다.

메뉴로 코리안 치킨이 있었는데, 매콤한 맛이 조금 지나쳤지만 맛은 있었다. 중독성 강한 매운맛? 중독성이란게 묘하다. 입을 헤~헤~하고 얼얼해 하면서 계속 생라면 스프를 찍어 먹는 이유가 뭘까?

# 매운맛에 중독되는 이유는 그것이 미각이 아닌 '통각(고통)'이기 때문이다. 매운 성분이 혀의 통증 수용체를 자극하면, 뇌는 몸이 공격받고 있다고 착각하여 이 고통을 달래기 위해 천연 진통제인 엔도르핀(Endorphin)과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Dopamine)을 대량으로 방출한다. 즉, 고통을 상쇄하기 위해 분비된 호르몬이 역설적으로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며 우리를 중독으로 이끄는 것이다. 심리학자 폴 로진(Paul Rozin)은 이를 '양성 마조히즘(Benign Masochism)'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는 안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몸이 느끼는 극한의 위협이나 자극을 유희로 즐기는 인간만의 독특한 본성이다. 무서운 영화를 보거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통제된 상황 안에서 고통을 경험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고도의 정신 활동인 셈이다.

선글라스

아내가 거의 물놀이 갈 때만 사용하는 선글라스가 하나 있다. 젠틀 몬스터(Gentle Monster)라는 국산 브랜드인데, 현대백화점에서 내가 직접 아내에게 추천해 준 안경이다.

처음 살 때부터 어쩐지 아내가 살짝 부끄러워 하는 것 같았다. 상당히 오바스러운 디자인이기는 하다.

그래도 가끔 바닷가 같은데 가서 저렇게 오바스러운 안경을 한번 써주면 본인은 물론이고 주위에 있는 가족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지 않나? 나도 사실 하나 사고 싶은데...

송하선글라스

이번 여행에서는 송하가 저 안경을 몇 번 썼는데, 얼굴이 동그래서 그런지 안경이 아주 잘 어울렸다. 그런데 송하도 살짝 부끄러운지 극구 사양해서 사진 찍기가 쉽지 않았다.

송하는 양말을 비롯해서 몸에 뭔가 걸치는 것에 질색을 한다. 모자만으로는 부족하고 꼭 선글라스를 써 주면 좋겠는데, 눈 부셔서 찡그리지 말고...자식이란게 참 맘대로 잘 안된다.

점심을 먹고 간신히 자리를 확보했다. 수건을 걸치고 소지품 딱 하나만 놓여 있는 썬베드였는데 일단 비비고 들어 앉았다. 점심 먹기 전부터 계속 그런 상태였으니 누군가 물건 두고 가버린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오면 미안하다고 비켜줄 요량으로 일단 터를 잡았고 다행스럽게 끝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v튜브

물놀이 용품은 점점 간소화되고 있다. 어릴 때는 튜브에 수박 무늬 공에 큼지막한 물놀이용 매트까지 챙겨 다녔는데 요즘은 V-튜브 딱 하나로 줄었다.

아내가 푸꾸옥 수영장에서 의지하고 있는 V-튜브에는 우리 가족의 여행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시작은 사이판에 있는 켄싱턴 호텔이었다.

시그니처튜브

하나는 사은품으로 받았고, 다른 하나는 소은이가 수영장에서 고리 던지기 게임으로 당당히 얻어낸 전리품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 때 받은 튜브들은 수명을 다했다. 본드나 테이프로는 다시 살려낼 수가 없었다. 가족들 특히 아내가 그 튜브를 너무 사랑해서 한동안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몇해 전 제주 파르나스 호텔에서 이 튜브를 다시 만났다.

야심차게 두 개에 도전했지만 하나에 머물렀다. 수영장에 오면 서로 차지하려고 난리지만, 오며 가며 귀찮기도 하고 한개가 오히려 낫다고 생각되는 순간도 많았다. 결국 아내의 결정이 현명했던 것 같다.

# 이 V자형 튜브는 현재는 파르나스 호텔 제주의 수영장 브랜드인 '에스추어리(ESTUARY)'를 통해 '시그니처 튜브'라는 명칭으로 판매되고 있다. 양 팔을 편안하게 걸칠 수 있는 암레스트(Armrest) 기능에 최적화된 V자 형태가 특징이며, 파르나스 호텔 내 자판기 등에서 20,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꽤 비싼 가격이었지만, 훨씬 견고하고 빵빵한 부력은 그 값을 충분히 해냈다. 딱 한번 바람을 넣었는데 돌아가기 전까지 다시 공기를 안 넣어도 빵빵했다. 역시 사람은 공짜만 너무 좋아하면 안된다. 비싸다고 무조건 다 좋은 건 아니지만, 비싼만큼 더 좋은 물건들은 많다.

엄마소은브이

점심도 먹었고 신나게 물놀이를 했다. 물놀이는 누구에게나 즐겁겠지만 우리 가족은 특별히 물놀이를 사랑한다.

아이들은 둘이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물에 한번 들어가면 오손도손 얘기하느라 몇 시간은 순식간이고 아내는 물 밖에서 맥주 마시고 누워 있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지만 아이들과 함께 물속에 들어가면 금방 어린아이가 된다.

우리 가족은 수영장 물속에서 즐겨하는 몇가지 놀이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우리 집에 왜 왔니?' 같은 놀이부터' 조스가 나타났다' 같은 류의 단순한 놀이를 많이 했는데, 몇 년 전부터는 오징어 게임 영향인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단연 대세 놀이로 등극했다.

그 외에도 끝말 잇기나 초성의 첫 두 자음을 지정해서 단어를 생각해 내는 게임, 세 글자로 계속 문장을 이어 나가는 놀이까지 다양하다. 세 글자 놀이는 자꾸 지저분한 스토리로 빠지거나 심하지는 않지만 약간 19금 냄새가 나는 계열로 빠져서 서로 원망하기도 한다. 본인은 문제가 없는데 서로 상대방이 그 쪽으로 자꾸 나간다고 덮어 씌우기 일쑤다.

송하미끄럼틀

아이들이 이제 놀이 기구 맛을 조금 느낀 것 같다.

나이에 비해서 약간 겁이 많아서 그런지 조금만 높아도 고개를 흔드는 아이들인데, 이번 푸꾸옥에서는 제법 스릴 있어 보이는 놀이기구에도 용감하게 도전을 시작했다.

홍천에 있는 오션 월드의 그 엄청난 놀이 기구에도 한번 도전할 수 있을려나? 내년이면 이제 소은이가 벌써 고등학생이고 송하도 중3이라 점점 시간 내기가 어려워질 것 같다.

여름 휴가조차 쉽지 않겠지만 하루쯤 시간 내서 수영장 정도는 가볼 수 있지 않을까? 또 혼자 철없는 기대를 해 본다. 그래도 만약 내기를 한다면 나는 '간다' 쪽에 걸겠다.

마사지예약

저녁에는 마사지를 가기로 했다. 아이들이 맛사지 맛을 알아 버렸다. 리조트 내부는 가격이 너무 사악해서 로컬 마사지를 물색했다.

아난다 스파 라는 곳이었는데, 구글에서 찾아서 직접 예약 했다. 보통 한국인이 운영하는 마사지들을 많이 이용했었고 그런 곳들은 카카오 톡으로 예약을 받곤 했는데 여기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은 아니었다.

구글로 예약을 다하다니... 초보 가이드 실력이 많이 발전했다.

아난다스파

호텔 정문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전보다 구글 지도 보고 찾아 다니는 실력도 많이 늘었다. 여름에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단련된 덕분인 것 같다.

'아난다 스파' 라고 얘기하는 걸 듣고는 아이들이 스파가 안 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안한다 스파'로 들은 모양이었다. 본의 아니게 아재 개그가 됐다.

마사지샵대기

사진만큼은 아니었지만 아담하고 깔끔했다.

한국인 직원은 없었는데 아주 친절하고 설명도 침착하게 잘 해주어서 별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여자 마사지사가 둘 밖에 없어서 우리 여인들 중 한명이 남자에게 마사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마사지샵대기

"아줌마가 뭐 어때." 하면서 아내가 나섰다. 문제는 그 남자 마사지사가 정작 너무 힘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경력도 짧은지 옆에서 하는 걸 보고 더듬더듬 간신히 따라하는 수준이었다고 했다.

나는 역대급으로 좋았다. 얼마 전에 판교에 있는 마사지 샾과 비교해 보면 아주 많이 차이가 났다. 그 분은 내가 어깨랑 팔 위쪽이 아프다고 했더니 너무 세게 주물렀는지 한동안 팔이 엄청 아팠다. 덕분에 뭉친 게 조금 풀리기는 했다.

돌아 오기전에 한 번 더 오려고 했는데, 예약이 밀려서 이 날로 푸꾸옥 마사지는 끝이었다.

Day 3 - 오해 (1월 2일 금요일)

3일차프롤로그

이른 아침 싱크대에서 마주친 귀여운 도마뱀과 모기에 물려 퉁퉁 부은 아이들의 얼굴로 시작된 하루는, 새로 산 수영복을 입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 덕분에 금세 활기를 되찾았다. 전날을 교훈삼아 부지런히 수영장 자리를 확보한 후, 나무 그늘 아래 의외의 명당 자리에서 한가로이 물놀이를 즐기던 평화로운 오후는 음식 주문을 둘러싼 직원과의 격렬한 실랑이로 순식간에 소란으로 바뀌었다. 결국 우리가 시키지 않은 음식 값 40불을 그 직원의 주머니에 우겨 넣으며 불편했던 마음을 그나마 조금 풀어냈다. 저녁에는 '강가'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인도 아랍 요리에 도전했는데, 쇼와르마와 탄두리 치킨, 갈릭 난이 만들어낸 이국적인 향기 속에서 아내의 빈 접시를 바라보며 호텔 앞 마트에 들러야겠다고 조용히 다짐했다.

수영장 도착

이날도 일찍 눈을 떴다. 어제 밤에 어지럽혀진 마루가 너무 처참해서 정리를 하고 싶었다. 쓰레기도 치우고 먹다 남긴 음식도 정리하려 싱크대로 갔는데, 괴 생명체를 발견했다.

아기도마뱀

도마뱀이었다. 종류가 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리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고 무섭다기보다는 오히려 약간 귀엽기까지 한 녀석이었다.

전날 밤에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고 핸드폰을 가져가서 촬영한다고 난리 법석을 떨었는데 아마 이 녀석과 같은 종류였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매끄러운 싱크대 벽면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꼼짝 달싹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해로워 보이지는 않아서 그냥 두었는데 나중에 돌아왔을 떈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마 룸 청소하는 분들이 적절히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싶다.

# 사진 속 도마뱀은 동남아시아에서 흔히 발견되는 '집도마뱀붙이(Common House Gecko)'로, 주로 밤에 활동하며 벽이나 천장을 자유롭게 기어 다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몸은 연한 갈색이나 반투명한 빛을 띠며,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기나 초파리 같은 해충을 잡아먹는 이로운 파충류로 알려져 있다. 독이 없고 성질이 온순하여 현지에서는 집을 지켜주는 친숙한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꼬리를 잡으면 스스로 끊고 도망가니, 밖으로 옮겨주고 싶다면 종이컵이나 그릇으로 덮어 살짝 떠서 화단에 놓아주는 것이 좋다.

숙소앞엄마소은

아침을 먹으러 가려는데, 아이들 얼굴이 엉망이었다. 모기 때문이었다. 희안한 게 어른들은 괜찮았다.

짐 챙길 때 모기향을 챙길까 하다가 결국 막판에 모기 기피제만 챙기고 그만 뒀는데, 큰 실책이었다.

수없이 휴양 여행을 다녔지만 모기 때문에 크게 고생한 적이 없었다. 인공지능이 알려준 '깜빡하기 쉬운 준비물 목록'에 모기향이 들어 있었는데, 무시한 대가를 치렀다. 소은이는 눈 바로 위, 송하는 뺨 쪽을 물려서 너무 괴로워했다. 좀처럼 인상 쓰지 않는 아이들인데, 아빠가 너무 미안했다.

숙소앞소은송하

그래도 아이들은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새로 산 수영복이 화사해서 환하게 웃는 얼굴과 아주 잘 어울렸다.

다른 물건 사러 백화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아레나 매장 앞을 지나는 길이었다. 아내가 '아이들 수영복 하나씩 새로 사줄까?' 하고 참으로 기가 막히게 멋진 생각을 해냈다.

아이들이 워낙 쑥쑥 크는 데다가 위에 입는 수영복 수트가 긴팔에 검고 칙칙해서 아이들이 별로 안 좋아한다고 했다. 티셔츠를 하나씩 새로 사 주었는데, 첫 눈에 맘에 들어 하더니 푸꾸옥에서 내내 그것만 입고 다녔다. 본인들도 편하고 보기도 좋으니 최고의 선택이었다. 아내에게 아주 많은 칭찬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으시댈 때마다 적극 호응해 주었다.

그래도 아빠 노릇 하느라고 아침 먹으러 가기 전에 수영장에 가서 자리를 미리 잡았다. 별로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아빠들이 다 하는 행동을 쭈뼛거리고 혼자 안 하다가 자리도 못잡고 가족들을 고생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수영장에 가서 가이드 눈치를 보는데 이쪽은 자리가 없으니 반대편으로 가라고 안내까지 해줬다. 푸꾸옥 수영장에서는 아침에 아빠가 수영장 자리 잡는게 현지 룰인 모양이었다.

아빠와두딸

9시도 안된 시간인데 바다가 보이는 풀 사이드 바 옆의 소위 '1등 전망 자리'는 벌써 빈자리가 없었다.

반대편으로 건너가 보니, 앞에 나무가 심어져 있는 구조물 같은 것으로 전망이 약간 가려진 애매한 자리가 몇 개 남아 있었다. 타올을 걸쳐 두고 수경이랑 책 두 권 그리고 가방 따위를 늘어 놓았다. 식구는 네 명이지만 그래도 양심적으로 딱 두 자리만 확보했다.

그런데 나중에 앉아 보니 오히려 명당 자리였다.

나무 그늘이 약간 드리워져서 너무 끝없이 덥지 않았고, 앞으로 사람들이 많이 안 다녀서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바로 옆에 음식 주문 받아 줄 작은 부스 같은 것도 있었다. 직원들이 눈치가 빠른 편이 아니라서 부르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것도 꽤 큰 장점이었다.

슬라이드앞소은송하
튜브엄마소은
바다엄마송하

아이들은 미끄럼틀 타러 가고, 아내는 튜브에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같이 바닷가 산책도 하면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사파리고 쇼핑이고 일체 한 눈 팔지 않고 수영장에만 틀어 박혀 정말 격렬하게 쉬기로 한 계획을 불도저처럼 밀어 붙였다. 다른 일에 조금의 미련도 두지 않았다. 어디 안 가고 수영장에만 있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외부로 아주 작은 이동이라도 하려면 교통편도 알아봐야 하고 괜찮은 장소 물색하느라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데, 수영장 안에만 있으니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배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더우면 물에 들어가고.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었다.

문제의 그 사건이 생기기 전 까지는....

수영장수채화

오해와 수습

물 속에서 놀다 보니 금방 배가 고팠다. 음식 주문을 하려고 옆에 있는 부스로 갔다.

수영장부스_수채화

첫 날 저녁에 주문한 스테이크 같은 걸 시켜주고 싶었는데 보이지 않았다. 어제 먹은 코리안 치킨에 피자 그리고 버거를 하나씩 골랐다. 그렇게 세 가지를 주문하려 하다가 혹시나 해서 한 번 물어봤다.

여기는 스테이크 같은 메뉴는 없나요? 그러자 아무 말 없이 좀전에 보여준 것과 다른 메뉴판을 꺼냈다.

뭐야.. 진작 보여주지....그 새로운 메뉴판에는 좀 더 다채롭고 요기가 될만한 음식들이 보였다.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상의하려고 메뉴판을 들고 가족에게 돌아왔다. 아내는 잠시 화장실에 가고 없었다. 아이들에게 스테이크 좋으냐고 물으니 좋다고 했다. 치킨으로 만든 다른 요리도 하나 골랐다. 어제 먹은 똑같은 치킨 보다는 새로운 요리가 나을 것 같았다.

주문을 하려 다시 부스로 향하는데 아까 그 직원이 다른 사람들이 있는 선베드 쪽으로 와서 주문을 받고 있는게 보였다. 직원 뒤에서 잠시 기다렸다. 꽤 주문 시간이 길었다.

마침내 주문이 끝난 것 같아 직원이 볼 수 있게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주문하고 있던 서양 젊은이가 재미있는지 웃으면서 그 직원에게 눈짓을 했다. 잠시 후 그 직원이 내게 다가왔다.

손등메뉴

스테이크와 치킨을 하나씩 달라고 말했다. 그 직원은 알겠다면서 펜으로 손등에 내가 시킨 메뉴들을 적었다.

아주 흡족했다. 아빠 노릇을 제법 잘한 기분이었다.

이틀 내내 피자랑 코리안 치킨만 주기 미안했는데, 기지를 발휘헤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테이크까지 주문을 했으니...

잠시 후 돌아 온 아내에게 자랑스럽게 무용담을 늘어 놓고는 누워서 다시 망중한을 보냈다.

와규버거

그런데 잠시 후에 한 보따리 가져 온 음식은 세상에... 버거랑 코리안 치킨 그리고 피자였다.

나는 놀라서 "우리 이런 것들 안 시켰는데? 스테이크랑 다른 치킨 요리 시켰잖아요." 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직원은 나보다 더 흥분한 목소리로,

"아니다. 분명히 이 음식 시켰다. 스테이크랑 치킨도 시켰지만 이것도 시켰다." 라고 말했다.

머리가 띵했다. 나는 아까 음식을 주문하다가 혹시 스테이크 있냐고 물었고, 있다고 해서 스테이크랑 치킨으로 바꿔 시킨 거였는데, 그 직원은 내가 추가로 시켰다고 생각한 것이다.

confirm.

내가 특히 발끈한 것은 그 직원이 '내가 confirm을 했다'고 주장한 부분이었다. 그 단어가 또렷이 들렸다. 내가 confirm을 했다고? 언제?

직원이 다섯 음식이 적힌 주문서를 내밀었다.

처음 보는 종이였다. '나는 이 주문서 처음 본다. 아까 주문할 때 당신이 손등에 직접 적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직원의 손등에는 아까 적은 글씨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아내도 단호해지기 시작했다. '빨리 이 음식 가져가세요. 우리 이런 것들 주문 안했어요.'

직원은 얼굴이 벌개져서 소리를 치고 안 된다고 펄펄 뛰고 난리였다.

센과치히로돼지

안 된다니? 우리가 돼지냐? 아이 둘을 포함해서 네 명이 요리를 다섯 개나 시켜 먹는 사람들이 어디 있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엄마 아빠처럼 이것들 다 먹고 돼지로 변하기라도 하란 말이냐?

나는 당신의 주문서를 지금 처음 봤고, 절대로 'confirm' 따위는 한 적이 없다. 도대체 내가 'confirm'했다는 사인이나 근거가 있느냐?

한참의 실랑이가 계속됐다. 잠시 후 그 직원이 체념한 듯 음식을 빼기 시작했다.

다른 여행객들도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졸지에 평화로운 수영장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난동객이 되고 말았다. 옆에 있던 어떤 서양 아줌마가 우리 음식을 가리키며 직원과 뭔가 얘기를 나누는 듯했다. 자기들이 그냥 먹겠다는 의미인가 싶었지만 확실하지는 않았다.

잠시 후에 스테이크와 치킨이 나왔다. 너무 흥분해서 그런지 나는 음식이 잘 넘어가지도 않았다. 아이들도 갑자기 풀이 죽었다. 옆 테이블로 아까 우리가 시킨 음식과 동일한 메뉴들이 배달되었다. 우리가 시킨 음식을 그대로 가져다 준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월급공제

맘이 편하지 않았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직원을 불렀다. 우리 주문은 어떻게 처리된 거냐고 물었다. 자기가 월급에서 그냥 부담하기로 했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동시에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아내가 말했다. "그러지 말고 그냥 아까 음식 가져온 것 우리가 결제할테니, 그렇게 처리하세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 직원이 완강하게 '자기 실수니까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아내가 내게 물었다. "지금 현금 가지고 있는 것 있어?" 10불 정도 있다고 대답했다. 지갑은 방에 두고 비상용으로 10불 조금 넘게 챙겨 왔다. 음식 값은 30~40불쯤 되는 것 같았다.

"방에는 현금 있지? 가서 돈 조금만 더 가져와. 아까 그 직원 한 달 월급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너무 부담이 클 것 같아. 우리가 그냥 내 주자. 놀러 와서 맘이 너무 불편하다"

버기를 타고 방에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메뉴판을 보고 음식 값을 정확히 계산해 보니 38불쯤 됐다. 15% 정도 택스랑 봉사료가 붙으니까 40불이 약간 넘는 금액일 것 같았다.

팁사양

그 직원을 다시 불렀다. 아내가 40불을 건넸는데 펄펄 뛰며 사양했다. 이래저래 조금 액션이 큰 편이었다. "자기 잘못인데 이럴 필요 없다. 그리고 이건 너무 많다. 정 그러시면 10불 정도만 주셔도 된다."

손사래 치는 직원의 주머니에 아내가 40불을 그냥 대충 쑤셔 넣었다. 직원은 눈물을 글썽였다.

수영장옆부스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그녀가 갑자기 한국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 지금 한국말 배우고 있어요. 저 한국 너무 좋아해요. 너무 감사합니다."

자리에 돌아왔는데 아이들이 물었다. "응, 엄마 아빠가 그냥 아까 그 음식 값 저 직원에게 줬어,"

그랬더니 아이들이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도 마음이 조금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우리의 수영장 옆에서의 소동은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정말 그 직원이 월급에서 40불을 부담하기로 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리고 내가 음식 주문할 때 처음 시킨 음식에 대해서 취소한다는 말을 분명히 안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식당에서 음식 주문할 때 확인할 책임은 고객이 아니라 직원에게 좀 더 많이 있지 않을까?

끝까지 싸워서 내가 불리할 것은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나중에 결제용 태블릿에는 음식 두 개에만 확인 사인을 했다. 그래도 그렇게 처리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는 않는다.

즐거운 휴양지에서 불편한 마음으로 계속 지내기 싫어서 그렇게 처리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직원이 나중에 환하게 웃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고,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나중에 건넨 40불은 충분한 값어치를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수영장전경

인도 아랍 요리 도전

그나마 조금 기분이 풀려서 아이들과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정작 음식이 조금 부족했었는지 금방 배가 고파졌다. 저녁을 잘 챙겨 먹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새로운 도전을 해 보고 싶었다. 외부 식당은 아니고 리조트 내의 다른 식당으로의 소소한 도전이었다. 어제의 경우 낮에는 수영장 선베드에서 먹고 저녁에는 테이블에 앉아서 먹었지만 풀사이드 옆에 있는 루나앤그릴이라는 똑같은 식당이었다.

조식 부페를 먹는 식당에서 저녁에는 인도 요리를 파는 것 같았다. 조식 부페장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어서 다른 식당인 듯 아닌 듯하게 공간만 살짝 분리해 놓은 곳이었다.

우리 가족이 즐겨 찾던 인도 요리 음식점이 있었다. 강가라는 곳인데, 몇 군데 같은 이름의 식당이 있는 프렌차이즈형 식당이다. 꽤 오랫동안 단골로 다니던 식당인데 최근에 문을 닫았다. 키 크고 한국말을 떠듬떠듬하는 친절한 아저씨가 있었는데 가끔 보고 싶기까지 하다.

탄두리치킨
팔락파니르
갈릭난

탄두리 치킨이라고 화덕에 구워서 기름기가 쫙 빠지고 매콤한 맛이 나는 닭 요리와 시금치로 만든 카레 팔락 파니르에 갈릭 난 같은 걸 곁들여서 먹는데 우리 가족 찐 단골집 중 하나였다. 그 아쉬움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강가'의 아쉬움을 멀리 베트남에 와서 푸는 셈이었다.

아이들 특히 그 중에서도 소은이가 그 식당을 좋아한다. 아내는 너무 많이 먹게 된다고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식성이 다들 너무 달라져서 한동안 주말 식당 정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사다리 타기로 메뉴를 정하고는 했는데, 소은이가 당첨되면 늘 강가를 골랐다. 아내는 아이고~~ 하면서도 웃으며 따라 나서곤 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다리 말고 합의로 메뉴를 정하던 시절에, 아내가 '강가는 너무 배가 불러서 싫다'고 하기에 '가서 조금만 먹으면 되지, 왜 많이 먹고 나서 그런 말을 하느냐'고 했다가 아내랑 심하게 다툰 적도 있었다. '너무 배부르면 덜 먹으면 된다'는 말에 기분이 상했던 것 같다.

전혀 다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와 다투는 빈도나 강도는 점점 약해지는 것 같다. 서로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고 가급적 상대방이 너무 싫어하거나 불편해 하는걸 안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 기운이 빠져서 그러는지도 모른다.

여기는 인도 요리만 있는게 아니라 중동 지역 그러니까 아랍 요리도 같이 있었다. 아랍 요리라...아이들은 물론이고 아내나 나도 아마 난생 처음인 것 같다. 낙타 고기도 혹시 있나?

인공지능에게 메뉴판 번역을 부탁했는데, 그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해서 직원을 불렀다. 노련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추천 요리와 음식에 대한 설명을 듣고 더듬거리며 음식을 시켰다. 아직 인공지능에게만 100% 의존해서 일을 처리하는 건 약간 시기 상조인 것 같다. 직원에게 질문하니 사진과 함께 추천 이유 등을 자세히 설명해 줘서 훨씬 큰 도움이 됐다.

인도요리

드디어 이국적인 향기와 함께 테이블 위로 주문한 음식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쇼와르마(Shawarma)라고 종이에 정성스레 말려 나온 음식은 난생 처음 접하는 아랍 요리였는데 그렇게 어려운 음식은 아니었다. 케밥의 일종이라는 아까 그 직원의 설명 그대로였다. 사실 이게 가장 무난했다.

여기에 '강가'의 추억이 떠오르는 노릇한 갈릭 난과 화덕에서 갓 구워져 초록색 소스와 함께 나온 탄두리 요리들로 푸꾸옥에서의 인도 아랍 요리 한 상이 완성되었다. 소은이는 강가에서 즐겨 먹던 라씨(Lassi)를 여기서도 주문했다. 라씨는 일종의 요거트 음료인데, 기능이 과하게 뛰어나서 먹자 마자 바로 화장실에 달려간 적도 있었는데 소은이는 역시 용감했다.

나는 전체적으로 음식이 괜찮았다. 아이들도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점심이 너무 부실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아내는 많이 먹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맘이 쓰였다. 나보다 조금 비위가 약한 편인데, 음식이 맘에 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아서라고 했다.

인도요리 식당을 추천한 내가 부담을 가질까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중에 호텔 앞 마트에서 뭐라도 조금 사다가 먹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Day 4 - 아쉬움 (1월 3일 토요일)

4일차프롤로그

아침 식사를 향해 아이들 손을 잡고 걸으며 느낀 잔잔한 행복감 속에서도 이미 이별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고, 돌아갈 날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조여왔다. 아이들이 자랑스럽게 보여준 놀이기구 도전과 바닷가 산책, 그리고 수영장에서 들려준 제갈량과 호치민 이야기까지, 평범해 보이는 하루 속에 우리는 최대한 많은 순간들을 새겨 넣으려 애썼지만 시간은 가차 없이 흘러갔다. 해변가를 거닐다 만난 러시아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과 베트남 전쟁의 두 얼굴을 떠올리며 역사의 무게를 잠시 생각하던 오후를 지나, 마침내 맞이한 마지막 저녁 식사에서 우리는 수영복 차림 그대로 랍스터와 스테이크를 주문하고 매운 다크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과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 사이에서 복잡한 감정의 실타래를 천천히 풀어냈다.

헤어진다는 것

소은이랑걷기

아침에 조식 부페 식당에 가려는데 버기가 잘 오지 않아서 한번 걸어가 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고 날씨도 그렇게 무덥지 않아서 나쁘지 않았다. 아이들과 혹은 아내와 손을 잡고 이런 길을 걸을 때 느끼는 행복감은 잔잔하지만 아주 짜릿하고 소중하다.

아내가 가끔 이런 사진을 찍는다. 스위스 여행 중에 리기산에서 내려와 어느 마을을 걸어갈 때도 이것과 아주 비슷한 사진을 찍어 줬다.

아마 아내에게도 이 모습이 소중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모양이다. 생각보다 내 몸매가 날씬해 보이는데 아내의 촬영 기술 덕분인지 모르겠다.

이제 벌써 돌아갈 날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여행이라는게 참 희안하다. 여행 출발을 기다리면서 계획을 세울 때는 참 더딘데, 막상 도착하고 나면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간다.

그래서 나는 여행지에 도착한 첫 날 밤, 수영장에서 놀다가 샤워 하고 저녁 먹으러 갈 때 기분이 가장 좋다. 그 때가 여행 기간이 가장 많이 남아 있을 때여서 그럴 것이다. 그러다 돌아가기 전날쯤 되면 기분이 착 가라 앉으면서 살짝 우울한 마음까지 생길 지경이 된다.

아내는 심지어 여행 갔다가 돌아오기 임박한 날의 그 기분이 싫어서 여행을 아예 가기 싫을 정도라고 얘기한 적도 있었다. '돌아오기가 너무 싫어서 심지어 가기도 싫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만큼 싫다는 얘기일 것이다. 나도 가끔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어쩌면 여행이란 게 가기 전에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때 가장 행복하고, 막상 여행을 할 때에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걸 아쉬워하다가, 오히려 이렇게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지나간 여행의 추억을 아름답게 회상하며 미소 짓고 그러는 거 아닐까?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은 법. 기쁨이 크면 그 기쁨이 사라질까봐 두려운 게 인간의 본성이라면, 그것 때문에 인간은 어쩌면 끝없이 불행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불교에는 사성제(四聖諦)라는 것이 있다. 고제(苦諦) · 집제(集諦) · 멸제(滅諦) · 도제(道諦)의 4가지 진리 또는 깨우침을 의미하는데, 그 중 가장 먼저 나오는 고제(苦諦)가 오해도 많고 어렵기도 한 개념이다. 보통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이 생노병사(生老病死)의 4고인데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것 등이 포함되어 8고를 이룬다.

사고팔고

# 사성제에서 제(諦 · Satya)는 진리 또는 깨우침을 뜻한다. 그러니까 사성제는 네 가지 높은 깨우침 또는 4가지 고귀한 진리라는 뜻인데, 첫 번째인 고제는 인생의 본질적인 괴로움을 의미하며 흔히 사고팔고(四苦八苦)로 설명된다. 이는 생로병사의 네 가지 근원적 고통에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애별리고(愛別離苦), 미운 사람과 만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구해도 얻지 못하는 구부득고(求不得苦), 그리고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는 오음성고(五陰盛苦)를 더한 것이다. 결국 고제란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에서 무언가를 영원히 소유하거나 유지하려는 집착 때문에 발생하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태 전반을 이야기하는 가르침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의 고통.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아예 없어야 해결된다는 말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의 원인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에 이르면 마음이 조금 허전해진다. 집착과 갈애를 끊어야 행복할 수 있고 그게 늘 유지되면 해탈해서 열반의 경지에 들 수 있다는데, 그렇게 기쁨도 슬픔도 없이 잔잔하기만 한 게 과연 내가 바라는 일인가?

사랑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지 않을 방법은 없다. 사는 동안은 어떻게 해볼 수도 있겠지만 결국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서 인간이 이별을 피해갈 방법은 없다. 아마도 이런 숙명 때문에 그렇게 많은 문학작품과 철학, 종교 같은 것들이 이에 대한 해답을 주려고, 그렇게 오랜시간 수많은 이야기들을 늘어 놓고 있는게 아닐까?

아쉬움 달래기

놀이기구소은송하

아이들은 이제 완전히 놀이 기구 선수가 됐다.

둘이서만 다녀 오기도 했는데,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엄마 아빠에게 놀이기구 타는 걸 보여주고 꼭 싶어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도 놀이기구는 꽤 여러가지 종류에 맨몸으로 타는 것도 있고 튜브를 타는 것, 튜브도 1인용과 2인용 다양했다. 아이들은 주로 2인용 튜브를 많이 이용했다.

하나가 아니고 둘인 게 참 다행이다. 연년생이라서 덩치는 비슷한데, 취향은 너무 다르지만 서로를 배려해 주는 마음이 있어서 많이 다투거나 하지 않고 잘 지낸다. 전생에 얼마나 깊은 인연이 있었는지, 이런 영혼의 단짝이 또 있을까 싶다.

세월이 지나 동성이든 이성이든 각자의 친구도 생기고 결혼도 하게 되면서 아주 많은 일을 겪게 될 것이고 관계가 어릴 때처럼 각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늘 지금처럼 지내리라 다짐하는 아이들을 보면 진짜 평생 붙어 다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놀이기구2

우리 아이들은 이런 모습 보여 주는 걸 아주 좋아한다. 보통의 여중생들처럼 괜히 새침해지고 비밀만 많아서 속 썩이지 않는 건 우리 부부에게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꽤 여러 번 미끄럼틀을 탔다. 나는 기특하고 예뻐서 동영상으로 열심히 촬영을 했다. 시간이 지나 보게 되면 아마 스스로도 이 날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 날 것이다.

나도 한번 타볼까 잠시 생각했는데, 다행히 아이들용 미끄럼틀에 덩치 큰 어른이 타서 볼썽 사나운 광경을 연출하지는 않았다. 이런 미끄럼틀을 언제 마지막으로 탔는지 아득했다.

진심으로 너무 무서워서 안 탄 건 절대 아니다.

같이 바닷가로 나갔다. 엊그제 그 쓰레기 사건 이후로 바닷가는 냄새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는데, 쓰레기는 거의 다 치워졌지만 아직 약간의 불쾌한 냄새가 남아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과 바닷가를 거니는 '우리 가족 필수 행사'를 생략할 수는 없었다.

바닷가엄마와아이들

멀리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아내의 모습이 한 프레임 안에 같이 잡혔다.

영화 '올드보이'의 롱테이크 장면만큼은 아니어도 꽤 사실주의적인 명장면이 탄생한 거라고 혼자 뿌듯해했다. 엄마와 아이들에게 보여줬는데 크게 감동 받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바다 색깔은 몰디브, 보라카이 같은 곳에 비할바 아니지만, 모래가 아주 고왔다.

게다가 엊그제의 그 난리를 겪고 나서 얻은 바닷가 풍경이라 값졌다. 여기저기 아직 쓰레기가 약간 남아 뒹굴고 있어서 한 쪽에 모았다. 지난번에는 너무 쓰레기가 많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나중에 그게 약간 후회가 됐다.

아이들은 역시 수영장이 좋은지 금방 바다에서 나와 자기들의 홈그라운드로 돌아 갔다. 아이들은 바다보다는 역시 수영장을 좋아한다. 쾌적하고 안정감이 있어서 그런지 어른들만큼 바다에 빠져 들지 않는다. 아내와 나는 둘이서 푸꾸옥의 바닷가를 거닐었다.

푸꾸옥의 러시안

우리가 묵은 뉴월드 리조트의 프라이빗 비치 오른쪽으로는 켐비치(Kem Beach) 공용 해변이 멀리까지 쭉 뻗어 있었다. 아내에게 바닷가를 따라 한번 계속 걸어 보자고 했다.

그런데 바닷가를 거닐면서 약간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일단 해변의 인구 밀도가 너무 높아서 거의 부산 해운대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바닷가에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서양인들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분명히 베트남인데 마치 유럽이나 미국의 어느 바닷가 같았다.

리조트옆바닷가

분명 동남아인데 서양인 천국이었다. 그리고 다른 곳과는 느낌이 약간 달랐다. 연령 구성이 달랐다.

다른 동남아 휴양지에도 서양인들이 없지는 않지만, 은퇴한 노인층이 많았는데 여기는 십대부터 이삼십대 젊은 사람들의 비중이 아주 높았다.

사실 여기엔 몇 가지 비밀이 숨어 있었다. 푸꾸옥 숙박 시설이 이렇게 붐비는 이유와도 관련이 있었다. 러시아 사람들이 많았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요즘 푸꾸옥이 아주 핫해서 한국 못지 않게 붐이라고 했다. 어쩐지 예약할 때 비행기보다 숙박 시설이 구하기 더 어려웠다.

해변 근처 음식점이나 호텔들이 고급스러워 보이지는 않았고, 대중적인 펍이나 3성급 호텔로 보였다. 아마 가성비 높은 장소들이고 그래서 젊은이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 뉴월드 리조트의 전용 해변(private beach)을 지나 북쪽 해안선을 따라가면 켐 비치(Kem Beach, Bai Khem) 구역에 조성된 프리미엄 상업 단지 멜로디아 부티크 숍하우스(Melodia Boutique Shophouse) 구역과 연결된 공공 해변에 이르게 된다. 즉 이곳은 켐 비치의 메인 광장 및 상업 지구와 맞닿아 있어 외부인의 접근이 대체로 용이하고, 해변 폭이 상대적으로 좁아지며 인구 밀도가 급격히 높아지는 구간이다. 이 해변 바로 뒤편에는 앤 호텔 앤 스파(Ann Hotel & Spa), 파랄리아 켐 비치(Paralia Khem Beach), JM 부티크(JM Boutique) 호텔 같은 3성급 실속형 숙소들이 타운하우스 형태로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추위를 피해 한 달 가까이 장기 체류를 하러 온 젊은 러시아인들이 이 일대 가성비 좋은 호텔들에 대거 투숙하며 유럽이나 미국의 유명 해변 같은 이국적이고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은 같은 사회주의 계열 국가라서 러시아 사람들에게 친밀감이 있나'하고 잠시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최근에 러시아발 푸꾸옥 행 직항편과 전세기가 재개된 것이 더 큰 이유였다.

추운 겨울을 피해 따뜻한 남쪽의 휴양지로 떠나는 것은 많은 러시아인의 꿈이다. 그중에서도 푸꾸옥은 직항과 환승 노선의 편리함은 물론, 뛰어난 가성비까지 갖춰 선호도가 매우 높다. 전쟁 여파로 유럽 여행길이 막히면서, 취사 시설을 갖춘 푸꾸옥의 실속 있는 숙소에서 몇 주씩 머물다 가는 '장기 휴양' 문화가 다시금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푸꾸옥

# 2014년 시작된 러시아-푸꾸옥 직항 및 전세기 노선은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인한 두 차례의 중단을 겪었으나, 약 3년 6개월 만인 2025년 10월 19일 블라디보스토크 노선을 시작으로 대규모로 재개되었다. 현재 베트남의 비엣젯항공(Vietjet Air)과 러시아의 아주르항공(Azur Air)이 주도하여 러시아 및 독립국가연합(CIS) 14개 주요 도시에서 월평균 75~80회 전세기를 운항하며 매달 1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수송하고 있다. 특히 겨울철 추위를 피해 10박 이상 장기 체류하는 러시아 관광객의 특성상, 푸꾸옥 내 풀빌라 등 숙박 시설 수요가 급증하며 2025-2026년 동절기 성수기 시장의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다낭이나 나트랑 외에 최근에 푸꾸옥까지 인기를 끌면서 한국인에게 베트남은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발리에 육박하는 인기 휴양지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가족만 해도 벌써 베트남이 네번째인데 나트랑에 갔을 때도 러시아 관광객이 많았던 기억이 있다.

# 베트남 관광 시장은 2024년 1,760만 명을 기록하며 코로나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한 데 이어, 2025년에는 약 2,150만 명으로 추산되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은 연간 450만 명에서 500만 명 이상을 유치하며 약 23~25%의 압도적인 점유율로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전체 비중은 3% 내외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서방의 제재와 겨울철 추위를 피하려는 장기 체류 수요가 맞물리며 가장 주목받는 성장군으로 떠올랐다. 2024년 182%라는 기록적인 폭증세를 보인 러시아 관광객은 2025년에도 약 70만 명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나는 러시아에 대해서 몇 가지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이미지가 더 나빠졌지만, 러시아 사람들을 볼 기회 자체도 많지 않았는데 그냥 막연하게 서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에 비해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시계자랑소련군

어릴 때 소련 군인들이 손목에 시계를 잔뜩 차고 그걸 자랑한다는 얘기를 아버지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해방 이후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을 처음 접한 북한 주민들의 낯선 느낌과 한국 전쟁 당시 적국의 병사에 대한 남한 국민들의 부정적 이미지 그리고 원래 유럽에서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는 역사적 사실들이 뒤범벅 되어서 생긴 사실과 과장이 섞인 이야기 같다.

# 소련군 병사들이 약탈하거나 수집한 손목시계를 양팔에 겹쳐 차고 다니며 어린아이들에게 자랑했다는 일화는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퍼진 구전 이야기이다. 이는 시계라는 근대적 문물을 처음 접하거나 소유욕을 가감 없이 드러냈던 군인들의 실제 모습인 동시에, 이후 냉전 체제 하에서 소련군을 다소 야만적이거나 문명화되지 못한 집단으로 인식하게 만든 한국인의 집단 기억 속 상징적인 장면으로 자주 인용된다.

쓰레기치우는중년여성

그런데 여기서 만난 러시아 사람들은 그동안의 내 선입견이나 편견과는 많은 거리가 있었다.

바다로 쓰레기가 떠내려올 때 놀라울만큼 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그 쓰레기를 같이 치웠다. 초기에 호텔 직원들이 본격적으로 작업에 나서기 전부터 여행객들이 바다에 나가서 쓰레기를 모으고 있었다.

행색도 제각각이어서 문신에 몸짱인 청년부터 넉넉한 몸매의 중년 여성들 그리고 괜시리 신난 아이들까지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였다. 그런 건 일종의 공공의식이고 공동체를 아끼는 마음이 몸과 마음에 베어 있기 때문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수영장이나 해변에서 만난 사람들도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물론 그 사람이 러시아인라는 확신은 없지만, 풀에 들어 갔다가 나오는 길에 미끄러져서 무릎을 부여 잡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와서 괜찮냐고 물었다. 영어로 얘기한 걸 보면 아마 미국인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왠지 그 사람이 꼭 러시아 사람인 것 같았다. 나중에 고맙다고 인사라도 할까 했는데 어느 새 자리에 없어서 끝내 물어 보지는 못했다.

베트남 전쟁의 두 얼굴

수영장에서 아이들에게 베트남 전쟁 이야기를 들려줬다. "얘들아, 월남이란 말 들어 봤어?" 했더니 소은이는 월남이 베트남이랑 같은 나라인줄 몰랐다고 했고, 송하는 어렴풋이 둘이 혹시 같은 거 아니냐고 답을 했다.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말이라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사실 베트남(월남), 베트콩, 베트민(월맹), 호치민, 사이공, 하노이 등등에 대해서 나도 아주 많이 헷갈려 했었다. 하나하나의 이름들은 아주 익숙한데 비슷비슷하고 뭔가 좀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그래도 최대한 아는대로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줬다.

베트남전쟁

" 베트남은 원래 프랑스 식민지였다. 그런데 2차 대전이 끝나고 우리나라처럼 베트남도 남북으로 분열되어 북베트남은 베트민(월맹)이라는 공산 정권이 남베트남에는 자유 정권이 각각 있었다. 1975년에 그 유명한 베트남 전쟁이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나면서 공산 국가가 되었다. "

# 베트남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를 상대로 한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1946~1954) 끝에 독립을 쟁취했다. 1954년 제네바 협정으로 베트남은 북위 17도선을 기준으로 공산주의 체제의 북베트남(베트남 민주공화국)과 반공 성향의 남베트남(베트남 공화국)으로 분단되었다. 베트민 (Viet Minh)은 베트남 독립동맹회(Việt Nam Ðộc Lập Ðồng Minh Hội)의 준말로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결성된 동맹체' 라는 뜻이고, 1941년 호찌민이 중심이 되어 프랑스와 일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만든 조직이며, 한자어로는 월맹(越盟)이라고 부르기도 하다. 베트콩 (Viet Cong)은 '베트남 공산주의자(Việt Nam Cộng-sản)'의 약칭으로 정식 명칭은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NLF)'으로,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 정권에 대항하여 싸웠던 남베트남 내의 공산주의 게릴라 조직을 의미한다.

" 베트남 전쟁은 사실 남베트남이 지기 어려운 전쟁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압도적인 지원과 직접적인 군사개입에도 불구하고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난 미국이 최초로 패한 국제 전쟁으로 남았다. 가장 큰 패인은 남베트남 정부의 부패로 베트남 국민들의 민심을 잃은 것을 꼽는다. 남베트남 정부 관리들은 원조된 무기를 북베트남에 팔아 넘기기까지 했다. "

베트남 전쟁의 승패 원인과 관련해서는 아마 여러가지 분석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알던 것과 성인이 되어 여러가지 기회로 알게 된 전쟁의 양상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회사에서 읽은 '3불 전략'이라는 책의 내용은 약간 충격적이었다.

보응우옌잡

3불 전략이라는 책은 경영 전략서인데 '붉은 나폴레옹'이라 불렸던 보응우옌잡(Võ Nguyên Giáp) 의 전쟁 전략을 경영 전략으로 풀어낸 책이었다.

베트남 하면 항상 상대편, 그리고 공산당, 나쁜 사람들이라고 배웠다. 그런 내게 정작 전략의 내용보다는 이런 사람을 위대한 전략가로 소개하는 책이 나오고 그걸 또 회사에서 필독서로 지정하기까지 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큰 충격이었다. 세월이 정말 많이 변했다.

# 보응우옌잡(Võ Nguyên Giáp) 의 3불(不) 전략은 압도적인 화력을 가진 미군에 맞서기 위해 '전쟁의 주도권'을 철저히 베트남군이 쥐는 데 집중한 비대칭 전술의 정수이다. 적이 화력을 집중할 수 있는 낮이나 맑은 날 대신 어둠이나 우기를 택해 싸웠고 (불기시, 不其時), 미군의 탱크와 장갑차가 무용지물이 되는 험준한 산악 지형과 미로 같은 지하 땅굴로 전장을 옮겨 적을 유인했다(불기지, 不其地). 이는 강자가 설정한 '정규전'이라는 판을 거부하고, 약자가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질 때만 승부를 거는 철저한 실용주의적 군사 철학이었다. 전술적으로는 정규군의 정면충돌 대신 게릴라전과 기습을 반복하며 적이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타격을 가했다(불기법, 不其法). 숲속에 정교한 부비트랩을 설치하거나 민간인으로 위장해 기습하는 전술, 그리고 자전거와 인력을 동원해 수백 킬로미터의 정글길을 뚫어 물자를 보급한 '호찌민 루트'는 현대적인 병참 개념을 완전히 뒤엎은 혁신이었다. 결국 3불 전략은 단순히 전장에서 승리하는 것을 넘어, 적의 정치적 의지와 인내심을 갉아먹어 스스로 물러나게 만드는 '지구전'의 완성이었다.

3불전략

베트남에 보응우옌잡 장군이 있었다면 한국군에는 채명신 장군이 있었다.

채명신은 베트남 전쟁 당시 보응우옌잡의 게릴라 전술에 대응하기 위해 '중대전술기지' 개념을 도입해 1967년 짜빈동 전투에서 한국군 1개 중대가 보응우옌잡이 지휘하던 북베트남군 1개 연대(병력 차 약 10배)의 공격을 완벽히 막아낸 전과를 올렸다.

그 전투 이후 베트남군에는 "확실한 승산이 없는 한 미군과는 싸워도 한국군과는 싸우지 말라"는 지침이 하달될 정도로 한국군의 독독한 전술과 전투력을 경계했다고 한다.

중대전술기지

#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승전 신화를 뒷받침한 중대전술기지는 전후방 구분이 모호한 게릴라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요충지에 원형이나 타원형으로 구축한 독립 요새였다. 다중 철조망과 지하 교통호, 벙커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모든 방향에서 가해지는 적의 기습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 기지는 베트콩의 활동 영역을 좁히고 민간인과 적을 분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적이 요새화된 기지를 공격하도록 유인한 뒤, 전 방향으로 형성된 강력한 화망과 인근 부대의 정밀한 지원 포격을 결합해 적을 궤멸시키는 ‘유인 섬멸’ 방식은 미군조차 우려했던 방어 위주의 전술을 최강의 공격 수단으로 탈바꿈시키며 압도적인 전투 교환비를 기록하는 핵심 비결이 되었다.

채명신 장군은 '민중은 물이고 게릴라는 물고기다. 물을 빼내면 물고기는 죽는다'고 믿었고, 실제로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할만큼 전쟁 중의 군의 기강 확립과 현지 민심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채명신지침

그래서 주민들이 기지 근처에서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보호했으며, 주민들과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베트공의 움직임에 대한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이런 것들이 기지 방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군 주둔지 주변 주민들 중에는 한국군이 지어준 다리, 학교, 의료 지원(비둘기 부대)을 기억하며 고마워하는 이들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 세상 어디서나 예외나 이탈자는 생기게 마련이다.

베트콩 전술의 특성상 게릴라와 민간인을 구분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믿기 힘들만큼 비극적인 사건들이 발생했다. 당시 우리 군은 게릴라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작전을 수행했으나, 1968년 퐁니·퐁넛 마을(약 74명)과 하미 마을(약 135명), 그리고 1966년 빈호아 마을(약 430명) 등에서 민간인이 대규모로 희생되는 참극이 발생한 것이다.

증오비

희생자의 대다수는 교전 능력이 전혀 없는 무고한 여성과 아이들, 노인들이었고 임산부나 고령자, 그리고 갓난아기를 포함한 어린이들까지 포함되었다.

# 하늘에 가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한국군들은 이 작은 땅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저질렀다. 수천 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가옥과 무덤과 마을들을 깨끗이 불태웠다" (증오비 우측 비문)

이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가볍게 다루어지고, 또 한 인간이 얼마나 무심하고 잔인해 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기록이다.

배상판결문전달

2025년 1월, 대한민국의 법원(서울지방법원)은 베트남 퐁니·퐁넛 마을 사건의 생존자 응우옌 티탄 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한국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당시 한국군이 민간인을 총격하고 가옥을 불태운 사실을 명백한 불법 행위로 인정했다.

이는 우리 사법부가 '전투 중이라 하더라도 비무장 민간인을 살상한 행위는 정당한 작전 수행으로 볼 수 없으며, 국가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준엄한 법 원칙을 최초로 세운 것이다.

2023년 1심에 이어 2025년 2심에서도 이 원칙은 재확인 되었다.

이 판결문은 소송을 도운 시민단체와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베트남어와 영어 등으로 번역되어, 베트남 현지의 피해자 응우옌 티탄을 비롯한 각계각층에 전달되었다.

베트남 정부도 이에 화답하여 '과거를 털고 미래로 나아가자' 고 하며 환영의 입장을 표명했다. 침략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강제 징용 문제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 때문에 분노를 느껴 본 한국인의 입장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베트남 전쟁은 우리에게 경제 발전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해 주었지만, 수천 명의 전사자와 고엽제 후유증이라는 뼈아픈 희생을 남겼다.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성전'이라 믿었던 이 전쟁이 실상은 민심을 잃은 부패 정권을 지원한 명분 없는 개입이었으며, 우리 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라는 충격적인 단면이 존재했음을 뒤늦게 알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물론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고려해야겠지만, 우리가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의 노근리 사건 등 민간인 학살을 비판하듯, 우리의 잘못 또한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국가의 부름에 응해 장렬히 산화한 참전 용사들의 헌신을 폄훼할 의도는 없다. 다만 '우리 군은 무조건 선, 적군은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만큼은 이제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 노근리 사건(1950년 7월)은 충북 영동군 노근리 철교 아래에서 피난 중이던 주민 수백 명이 미군의 공중 폭격과 기관총 사격으로 희생된 사건이다. 당시 미 지휘부는 북한군의 위장 침투를 우려하여 '전선을 넘으려는 모든 민간인을 적대 세력으로 간주하고 사격하라'는 강경한 대응 지침을 내렸으며, 이 과정에서 희생자의 다수가 여성과 어린이, 노인들이었다. 노근리 외에도 낙동강 방어선 유지를 위해 피난민이 있는 상태에서 진행된 왜관철교 폭파나 곡계굴 포격 사건 등, 작전 수행 중 민간인을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여 발생한 피해 사례가 전국적으로 수백 건에 달한다.

첫 베트남 여행에서 마주한 현지인들의 우호적인 태도는 놀라웠다. 베트남이 여행지로 인기를 끌기 전에 나는 베트남 사람들이 우리를 아주 미워할 줄 알았다.

그런데 과거의 적국이었던 우리를 따뜻하게 대하는 그들의 모습 뒤에는, 전쟁에서 승리했기에 베풀 수 있는 '승전국의 아량'이 자리 잡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베트남인들은 프랑스와 미국 같은 당시의 세계 최강국들을 꺾고 자기 나라를 결국 지켜낸 사람들이다. 그 원동력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한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베트남의어제와오늘

**채명신 장군 이야기 **

채명신 장군은 베트남 전쟁 영웅인 보응우옌잡 스토리만 알고 있던 나를 부끄럽게 만든 인물이다. 그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기 힘든 거대한 모자이크와 같다. 수많은 무공훈장을 받은 전쟁 영웅이자, 적장의 아들을 키운 휴머니스트, 그리고 권력의 독주에 항거한 강직한 군인. 하지만 그 화려한 명성 이면에는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아픈 손가락인 '제주 4.3'이라는 그림자도 함께 드리워져 있다.

1926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김일성의 회유를 뿌리치고 월남한 그는, 임관 직후 소대장으로서 제주 4.3 사건의 한복판에 던져졌다. 당시 그는 강경 진압을 주도하던 제9연대 소속이었으며, 직속 상관이 연대장을 암살하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목도했다. 훗날 그는 이 사건을 공산 폭동을 막기 위한 군사 행동으로 평가하며 진상 규명에 반대하는 보수적 시각을 유지했으나, 동시에 경찰의 실책이 무고한 희생을 키웠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에게 제주는 '참군인'으로 가는 길목에서 마주한 첫 번째이자 가장 뼈아픈 역사의 시험대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유격 부대 '백골병단'을 이끌며 전설적인 전과를 올렸다. 1951년 강원도 인제에서 생포한 북한의 거물 유격부대장 길원팔(吉元八)과의 일화는 그의 다면적 매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채 장군은 전향을 거부하는 적장의 기개를 높이 사, 그가 김일성에게 받은 권총으로 명예롭게 자결할 수 있도록 실탄을 장전해 건네주었다. 사후에는 정중히 장례를 치러주었으며, 남겨진 그의 세 살배기 아들을 거두어 '채락휘'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친아들처럼 키웠다. 아들은 훗날 교수가 되어 성장할 때까지 자신의 출생 비밀을 전혀 몰랐을 정도로 채 장군은 그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1965년 초대 주월한국군 사령관으로 '중대전술기지'라는 독창적 전술을 통해 베트남 전쟁의 영웅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그 정점에서 그는 또 다른 결단을 내린다. 혁명 동지였던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 헌법을 통해 영구 집권을 꾀하자, "군인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되며,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겨야 한다"며 면전에서 강력히 반대한 것이다. 이 일로 대장 진급에서 누락되어 군복을 벗어야 했다.

2013년, 그는 장군 묘역이 아닌 일반 사병 묘역에 묻히길 원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생사를 함께한 부하들 곁에 눕고 싶다"는 마지막 외침은 계급과 권위가 지배하는 사회에 커다란 경종을 울렸다.

채명신 장군은 우리 현대사의 영광과 상처를 동시에 투영하는 거울이다. 제주와 베트남에서의 진압과 학살 논란이라는 '그림자'와, 전장에서 보여준 기개와 사후의 소박한 마무리가 주는 '빛'은 한 인간 안에서 격렬하게 충돌한다. 그를 단순히 영웅화하거나 혹은 가해자로 단죄하기보다, 그 모순된 삶 전체를 응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현대사의 진실된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채명신한국전쟁
채명신장군
채명신묘

제갈량과 호치민

아이들에게 수영장에서 보웅우엔잡이나 채명신 장군 이야기를 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보다 아이들이 알아 두면 좋을 것 같아서 삼국지 얘기를 조금 해줬다.

칠종칠금

제갈량의 칠종칠금 얘기를 꺼냈다.

"너희들 삼국지 제갈량 알지? 제갈량이 남쪽의 어떤 나라를 정벌하러 가서 적의 우두머리인 맹획이라는 자를 7번이나 잡아서 풀어주기를 반복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거기가 여기 베트남이야. 4자성어로 칠종칠금."

아내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물었다. "왜 잡았다가 도로 풀어줘? 또 잡을 거면서?"

"그건 그 지역이 제갈량의 촉나라 본거지에서 너무 멀기 때문에 잡아가거나 죽이고 떠나면 나중에 다시 반란이 일어나거나 촉의 지배를 거부하게 될 가능성이 커서 진심을 얻어 지배력을 강화하려고 그런거야. 게다가 당시 제갈량의 촉나라는 조조의 위나라와의 일전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후방인 남쪽의 남만이 안정되길 바란거지."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칠종칠금

그런데 나중에 혹시 해서 찾아 보니 틀린 설명이었다. 제갈량이 정벌한 남만은 베트남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너무 열심히 들어서 아빠의 의욕이 조금 과했다.

그래도 아이들이 재미있어 해서 뿌듯했고 칠종칠금(七縱七擒)이라는 고사성어도 알게 되었을테니 크게 손해 볼 건 없었으리라고 스스로 나름의 위안을 삼았다. 이런 일에 대해서 나는 정신승리의 명수다.

# 제갈량이 정벌한 남만(南蠻) 즉 '칠종칠금'의 실제 무대는 현재의 중국 운남성과 귀주성 일대인 '남중' 지역이다. 이야기 속 묘사된 밀림과 코끼리 부대 같은 열대 기후의 이국적인 풍경이 동남아시아의 이미지와 매우 유사한 데다, '남만'과 '베트남(월남)'이라는 명칭에 공통으로 '남(南)'자가 들어가고 지리적으로도 국경이 맞닿아 있어 두 지역의 이미지가 혼동된 것이다.

푸꾸옥 수영장에서의 '아빠의 역사 이야기'는 호치민으로 이어졌다. '사람 이름 호치민'과 '호치민 시' 이야기를 다 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지명과 관련된 이야기로 시작했다.

하노이호치민사이공

"베트남의 수도는 어딜까? 하노이라고 들어 봤지? 거기가 북베트남의 수도였고 통일 후에도 수도야."

"그럼 사이공은 뭘까? 남베트남의 수도였지. 그런데 통일 후에 베트남의 영웅 호치민 이름을 따서 호치민시로 바꾼거야. 물론 아직 사이공이라고 부르기도 한대."

"그런데 호치민이란 사람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한 도시의 이름을 아예 호치민이라고 바꾸기까지 했을까?"

"도로 이름 정도는 몰라도 우리 나라에 사람 이름을 딴 도시는 한 때 충무로 불리다가 다시 통영으로 돌아간 곳 하나 정도만 생각나는데... 아! 최근에 만들어진 세종시가 있구나."

"호치민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호아저씨'라고도 불려. 독립운동 지도자이자 북베트남(베트남 민주공화국)의 국가주석으로 우리나라로 따지면 대통령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정도로 호치민이 베트남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거겠지. 아마?"

호치민나산

"호치민은 국가 지도자이면서도 생활이 아주 검소해서 통일 후에도 대통령 궁에 살지 않고 인근의 프랑스인 전기수리공이 살던 작은 집에서 살았다고 해."

여기서도 작은 오류가 있었다.

실제로 호치민은 그가 평생을 갈망하던 통일(1975년)을 끝내 보지 못하고 1969년에 사망했다. 아이들에게 잘 모른다고 대충 막 얘기해서는 안된다. 잘못된 정보로 혼동만 주면 큰일이다.

# 호치민은 독립 후에도 화려한 주석궁을 거부하고 소박한 '54번 가옥'과 이후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고상 가옥(Stilt House)'에서 평생을 보냈다. 1958년부터 1969년 서거 전까지 머물렀던 이 나무 집은 침실과 집무실만 갖춘 극도로 단순한 구조로, 권위주의를 멀리하고 민중과 가까이하고자 했던 그의 청렴한 지도자 철학을 상징한다. 낡은 타이어를 잘라 만든 샌들과 책 몇 권이 전부였던 그의 검소한 생활상과 함께 이 고상 가옥은 그가 베트남 국민들에게 성인(聖人)에 가까운 깊은 존경을 받는 핵심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아이들은 호치민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아마 우리의 베트남 방문이 철저히 휴양지인 다낭과 나트랑, 푸꾸옥 같은 곳이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푸꾸옥에도 과거 코코넛 수용소 같은 유적지가 있다고 하던데 우리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호치민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한번 깊게 생각해 봤으면 했다.

우리 나라에는 호치민처럼 전 국민이 큰 반대없이 존경하는 근현대 인물이 없다. 그래서 지폐 하나에 인물을 넣는 것도 그렇게 어렵다고 한다. 김구, 김대중, 노무현을 좋아하는 사람과 이승만,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극명하게 대립한다.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다.

호치민영묘

"베트남 사람들의 호치민에 대한 존경심은 대단해서 요즘도 그 묘소(호치민 영묘)에 참배하는 사람들이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해."

# 호치민이 베트남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이유는 저 검소함이 전부가 아니다. 그는 이념의 벽을 넘어 '민족의 독립'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종교와 계급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품어 안은 통합적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베트남은 하나"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뿔뿔이 흩어진 민심을 용광로처럼 녹여낸 그의 포용력은, 프랑스와 미국이라는 거대 강대국들을 상대로 끝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호치민은 또한 자신의 과오를 정직하게 인정할 줄 아는 도덕적 용기를 지닌 지도자였다. 1950년대 토지 개혁 과정에서 무리한 정책으로 인민들이 고통받자, 그는 권력의 뒤에 숨거나 부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대중 앞에 나서서 자신의 부족함을 눈물로 사과했다. 절대권력자가 자신의 실책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진심으로 책임지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신뢰를 넘어선 깊은 경외심을 심어주었으며, 이것이 바로 그가 베트남의 영원한 '호 아저씨'로 살아 숨 쉬는 진정한 이유다.

호치민영묘

하노이의 호치민 영묘에 가면 그의 유언과는 달리 방부 처리된 호치민의 시신을 볼 수 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란 말로 유명한 제레미 벤담부터 스탈린이나 모택동, 김일성 등 공산권 지도자들은 사후에도 시신을 보전하는 경우가 꽤 있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는데 솔직히 나는 이런 것들이 조금 불편하다. 하기야 산소에 봉분을 하고 비석이나 탑을 세우는 행위들도 아쉽고 그리운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들이니 이것과 맥락이 완전히 다른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신을 그대로 보전하는 것은 너무 보기에 거북하지 않은가?

역사의 유리관 속에는 사후에도 육신을 남긴 이들이 존재하지만, 그 속에 담긴 지향점은 저마다 확연히 다르다. 스탈린과 김일성, 모택동은 권력의 영속성과 체제 신격화를 위해 거대한 영묘의 주인공이 되는 길을 택했다면, 호치민은 이들과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었다.

호치민은 마지막 순간 한 줌의 재로 조국의 산천에 뿌려달라고 유언했지만, 국가 통합의 상징이 필요했던 후대들에 의해 역설적으로 유리관 속에 '박제'되었기 때문이다.

호치민의 유해는 서거 당시 소련으로부터 전수받은 세계 최고 수준의 생체 보존 기술을 통해 방부 처리되었으며, 현재도 매년 정기적으로 러시아 전문가팀이 참여하는 고도의 정밀 유지 보수 과정을 거쳐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제레미벤담

제레미 벤담은 이런 독재자들과는 약간 또 다르다.

그는 자신의 공리주의 철학을 죽음으로써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오토 아이콘(Auto-icon, 자기 상)'이 되기를 선택했다. 현재 전시된 그의 모습은 실제 골격 위에 옷을 입힌 것으로, 얼굴 부분만 밀랍 복제품이다. 미라가 된 실제 머리는 한동안 그의 발치에 놓여 있었다는 점에서 어떤 면에서는 독재자들의 영묘보다 더 기괴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기이한 선택조차 철저한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벤담은 자신의 시신이 낭비되지 않도록 해부용으로 기증해 의학 발전에 기여하게 했으며, 그 후에는 전시를 통해 '죽어서도 사회적 효용을 다하는 표본'이 되고자 했다. 이는 죽음마저 철학적 실천의 도구로 삼은 한 철학자의 집요한 신념을 보여준다.

호치민김일성

호치민은 냉전 시절 김일성, 모택동과 전략적 연대를 맺었고 우리나라와는 적으로 전쟁을 했던 나라의 지도자였다. 그래서 호치민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조심스럽고 베트남 전에서 가족을 잃거나 공산주의라면 치를 떠는 사람들에게는 끔찍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호치민은 그가 비록 공산주의자였으나 평생을 자기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싸웠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목적 달성을 위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즉 불교나 천주교의 종교인, 지주, 심지어 과거 왕실 세력까지도 배척하지 않고 아우르는 유연함을 보여주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동 시대의 세계 지도자들 중 거의 유일하게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솔하게 사과한 지도자였다는 것이다. 나는 모택동이 문화대혁명이나 대기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서 사과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 모택동이 주도한 대약진 운동(1958~1962)은 단기간의 경제 발전을 목표로 무리한 집단 농장화와 비현실적인 철강 생산을 강행하다 농업 생태계가 파괴되어 최소 1,500만 명에서 최대 4,500만 명에 이르는 아사자를 낸 인류 역사상 최악의 대기근을 초래했다. 이후 전개된 문화대혁명(1966~1976)은 권력 강화를 위해 청소년 조직인 홍위병을 앞세워 기존의 질서와 지식인, 전통문화를 '구습'으로 규정하고 파괴함으로써 중국의 현대사를 수십 년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약 481만 명이 '반혁명 분자'라는 낙인이 찍혀 고초를 겪었으며 대학 입학시험이 폐지되고 약 4년에서 8년간 대학교와 고등학교의 학생 선발이 중단되었다. 사망자 수 추정치는 100만 명에서 2,000만 명까지 광범위하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인용되는 수치는 약 200만 명이다.

그래서 지금 중국인들조차 '모택동은 공(공로)은 7이고 과(과오)가 3'이다. 라고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호치민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평가와는 전혀 다르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용서를 빌고 반성하고 새로운 길로 갈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그리고 대단한 업적을 이뤄낸 사람들일수록 더더욱 자신의 과오를 시인하고 반성하는 자세를 갖기 어렵다.

주위에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적어지고 무조건적으로 칭송하고 따르는 사람들만 점점 늘어난다.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호치민은 그런 점에서 한번 진지하게 살펴 볼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소은아, 송하야. 아빠도 가끔 너희에게 실수할 때가 있지? 그때 아빠가 '내가 아빠니까 무조건 옳아'라고 우기는 것보다 '미안해, 아빠가 잘못 생각했어'라고 말할 때 너희 마음이 더 열리는 것과 비슷하단다. 호치민은 그 어려운 걸 해냈던 사람이야."

아빠와두딸_수채화

마지막 저녁

푸꾸옥에서의 마지막 밤이 점점 가까워 오고 있었다.

아이들과 이런 곳에 다시 오기가 앞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 소은이가 곧 고등학교에 입학할테니 며칠씩 시간을 내서 해외 여행을 가는 게 어디 쉽겠는가? 아이들 놔두고 아내와 둘이서만 여행을 가는 것도 농담 삼아 얘기를 한 두번 하기는 했는데 썩 내키지 않을 것 같다.

바닷가에서엄마와두딸

바닷가에서 같이 사진을 찍는데, 아이들이 새삼 아주 성숙해 보였다. 아이들이 더 꼬마였을 때는 여행 가서 중고등학생 아이들과 함께 온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은 언제 저렇게 크나 싶었는데... 잠깐 돌아보니 금방 이렇게 훌쩍 커버렸다.

바닷가로 늦은 오후의 햇살이 찬란하게 내려 앉고 있었다. 1월의 귀한 여름 바다 풍경이었다.

윤슬

수영장에서 '윤슬'을 만났다. '윤슬...' 예쁜 말이다. 최근에 알게 됐다. 요즘 새로 많이 쓰이기 시작하는 단어인 것 같다.

언젠가 송하가 이 단어 뜻을 맞춰 보라고 퀴즈를 냈는데, 나는 처음 들어 보는 단어였다. 아마도 교과서에 실린 어떤 문학 작품 같은 곳에 쓰인 단어가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1999년 발간된 《표준국어대사전》에 처음 등재되었으며, 주로 문학적 묘사에서 평화로운 수면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할 때 사용된다. '윤이 나는 물결'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어, 현대에 이르러 각종 예술 작품과 성명(姓名) 등에 널리 쓰이고 있다. 요즘 세대가 이 단어를 친숙하게 느끼는 이유는 현재 초등학교와 중학교 국어 교과서의 '고유어(순우리말)' 관련 단원에서 '예쁜 우리말'의 대표적인 예시로 매년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방영된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주요 등장인물 이름이 '윤슬'이었던 것도 대중화의 큰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은 익숙한 단어인 것 같은데, 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제 제법 어려운 문학 작품들도 읽고 역사나 과학도 배우게 되면서 가끔씩 아빠를 깜짝 놀라게 할 때가 있다.

백석

내가 학교 다닐 때 배우던 것과 전혀 다른 것들도 많다. 특히 국어 시간에 배우는 시나 소설 같은 문학 작품들 중에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고 물어 보면 전혀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같은 작품을 아이들은 전혀 몰랐다. 춘원 이광수와 '무정' 같은 작품에 대해서도 아이들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마도 우리 학창 시절에 많이 다뤄지던 작품 중에 친일 행적이나 다른 문제들 때문에 아예 교과서에서 빠져 버린 작품들도 많은 것 같고, 새롭게 주목 받기 시작해서 새삼스레 다뤄지는 작품들도 있는 것 같다.

정지용

# 오늘날의 문학 교과서는 예술적 완성도만을 중시하던 과거의 관점에서 벗어나 작가의 역사적 책임과 삶의 궤적을 통합적으로 평가함에 따라, 과거 '국민 문학'으로 칭송받던 '국화 옆에서'의 미당 서정주나 '무정',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춘원 이광수, 삼일독립선언서까지 썼다가 나중에 친일로 돌아선 육당 최남선, '사슴'의 노천명,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의 모윤숙 등 친일 행적 문인들의 작품은 대폭 삭제되거나 비판적 검토의 대상으로 밀려난 반면, 1988년 해금 조치 이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여우난골족' 의 백석이나 '향수'의 정지용 등 한때 금기시되었던 월북·재북 작가들이 한국 근대 문학의 정수로 새롭게 조명받으며 수록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지는 등 문학적 가치관의 근본적인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이육사와 윤동주는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게 다루어져서, 친일 작가들의 비중이 줄어든 자리를 이분들의 저항 의식과 민족적 가치가 더 단단하게 채우고 있다.

어떤 예술가나 작가, 지식인 등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단편적으로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한 인간이 평생을 일관성 있는 모습으로 사는 경우는 드물고 오히려 세월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궤적이 드라마틱하게 요동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게다가 어떤 사람의 일생을 평가해 보면 공과 과가 모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평가 역시 다층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한국 근현대사에는 시대를 선도하는 예술적으로 뛰어난 작품들을 만들어 냈지만 말년에 변절하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인물들이 유독 많은 것 같다.

이런 사람들과 그들의 작품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그 자체도 엄청난 논란거리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굳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그런 논란이 많은 사람들의 작품을 다루고 가르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성인이 되어서 알게 돼도 충분하지 않을까?

과학 분야로 오면 이러한 변화의 속도가 더욱 체감된다. 내 공부가 부족한 게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학창 시절에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 같은 현대 물리학을 접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저 뉴턴 역학 중심의 고전 물리학과 복잡한 수식 계산에 매달려 허우적거렸던 것이 당시 우리네 과학교육의 서글픈 풍경이었다.

시간지연팽창.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확연히 다른 세상을 배운다.

특수 상대성 이론의 시간 지연과 길이 수축, 빛의 입자성을 증명하는 광전 효과, 나아가 반도체의 p-n 접합 원리까지 학습한다고 하니 측은하기까지 하다.

첨단 기술의 근간이 되는 핵심 개념들을 필수적으로 익히며 우리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구체적으로 현대 과학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다.

게다가 최근 인공지능(AI)의 발달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앞으로의 학교 풍경은 또 얼마나 판이해질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기술이 발달해 세상은 더 살기 좋아지는 듯한데, 아이들의 앞날을 생각하면 마냥 밝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인공지능.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 과연 미래에도 유효할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당장 인문계 전문직이 전부 사라진다는 말이 들려오고, 난공불락이라 믿었던 IT 개발자나 의사, 약사, 변호사 같은 직종마저 위기론이 대두된다.

심지어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여겼던 예술 분야나 전문 경영인조차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하니... 아이들에게 대체 어떤 길을 추천해 줘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결국 또 살아갈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돌이켜보면 어느 시대나 인류는 급변하는 세상에 두려움을 느꼈고, 당장이라도 큰일이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곤 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적응하고, 오히려 그 시절을 그리워하기까지 한다. 이런 점에서는 인간이란 참 가벼운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수메르점토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미래 세대 걱정은 아주 오래된 습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종교 경전마다 말세를 걱정하는 탄식이 넘쳐나고, 심지어 4,000년 전 수메르 유적에서 발견된 점토판에도 "요즘 아이들 버릇없어 큰일"이라는 문장이 등장한다니 말이다.

기원전 1,700년 수메르인의 점토판 기록에도 오늘날의 가정이나 학교 풍경과 다를게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왜 그렇게 버릇 없이 구느냐?" "도대체 왜 학교에 안 가고 빈둥거리느냐?", "선생님께 존경심을 표해라", "제발 철 좀 들어라" 같은 꾸지람이 점토판 여기저기에 등장한다.

결국 어느 시대나 어른들은 낯선 변화를 '위기'나 '타락'으로 규정했지만, 정작 그 '버릇없는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문법으로 서서히 세상에 적응해가며 문명을 개척해왔다.

'말세'라는 탄식이 수천 년간 마르지 않았다는 사실이야말로, 세상은 그리 쉽게 망하지 않으며 인류는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적응해 나간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아닐까.

AI가 가져올 거대한 해일 앞에서도 인간은 늘 그랬듯, 기어이 적응해 나갈 것이다.

인간과인공지능

저녁 식사는 얼떨결에 수영장 옆 식당에서 먹기로 했는데 결과적으로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뉴월드 리조트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식당의 절대수가 약간 부족하고 종류가 그리 다양하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 가족이 여행 중에 가장 선호하는 일식당이 없었다.

물리아데판야끼에도긴

얼마 전에 다녀 온 발리의 물리아 리조트는 식당이 아주 훌륭했었다. 특히 에도긴이라는 철판 요리 집이 가격도 적당하고 아주 인상적이었다.

사람 수대로 코스 요리를 주문했으면 일단 양도 너무 많았을 것 같고 가격도 부담스러웠을 텐데, 종업원이 친절하게 데판야끼 코스로 2인분 정도를 주문하고 추가로 약간의 단품을 곁들이라고 알려줬다. 맛도 훌륭하고 분위기도 멋졌지만 무엇보다 직원의 안내가 아주 현명하고 합리적인 식당이었다.

일본인 여행객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일본인들은 베트남보다는 발리나 푸켓, 코사무이 같은 곳들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베트남 특히 푸꾸옥은 아직 개발 중이라 여러가지 어설프고 안심이 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도 여기는 아직 경륜이 짧은 게 느껴진다.

특히 종업원들이 대부분 아주 어려 보였는데, 그만큼 아직 경험이 부족한지 허둥대거나 어이 없는 실수도 잦다. 앞서 수영장에서의 그 '주문 오해 사건'도 그런 맥락인 것 같다.

LUA Grill & Bar

호텔 내에 딱히 다른 식당이 생각나지 않았지만, 호텔 밖에 절대 나가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우리에게 수영장 옆 식당이라는 아주 좋은 대안이 떠올랐다.

수영장을 나서다가 아내가 '그냥 여기서 먹을까?' 라고 한 마디 얘기한 게 신의 한수가 되었다.

혹시 수영복 입은 채로 식사할 수 있냐고 물었다. 직원이 잠시 망설이더니 비치 타올을 깔고 앉으라고 했다.

막상 앉아 보니 아주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수영복 갈아 입고 다시 나오려면 귀찮았을 텐데. 결과적으로 도착한 날 저녁 식사한 곳과 같은 곳에서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기분은 아주 복합적이었다.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과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의 교차?

마지막저녁

마지막 저녁이라는 생각에 푸짐하게 주문했다.

하나에 거의 10만원에 육박하는 랍스터에 안심 스테이크까지 넉넉하게 시켰다. 스테이크는 양도 푸짐하고 맛이 좋았는데, 랍스터는 볼품 없었다. 속초 홍게 생각이 났다. 떠나기 아쉬운 수영장과 바다를 눈에 잔뜩 담아 가려고 애쓰며 마지막 저녁식사를 즐겼다.

아이스크림

디저트로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먹었는데, 가격은 아주 사악했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에 맛도 좋았다.

코코넛, 망고 외에 초콜렛 맛이 있었는데, 판매하는 직원이 매운 맛이 나는데 괜찮으냐고 물어 봤다.

매운 초콜렛? 처음 들어 보는 얘기였다. 소은이가 먹어 보라고 해서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아주 절묘한 맛이었다. 아주 진한 다크 초콜렛 맛인데 다크 중에서도 아주... 아주... 다크한 맛이었다.

123마트

저녁을 먹고 나서 호텔 앞에 있는 마트에 갔다. 맥주도 조금 부족하고 과자를 조금 보충할 목적이었다.

한글로 환영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는 마트가 하나 있었고 123마트라고 적혀 있는 마트가 하나 있었는데 들어가 보니 한글 안내 문구가 적혀 있다는 것 외에는 구색이나 규모 면에서 거의 차이가 없었다.

도착 다음 날 그러니까 아이들이 모기에 엄청 물려서 속이 상했던 그 날, 저녁 때 모기향 같은 게 있을까 해서 여기 마트로 와서 찾아 봤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 봐도 잘 보이지 않았다. 직원에게 가서 '모스키토' 라고 얘기하니 썬크림을 가리켰다. 내 바디 랭귀지가 그리 부실했나?

셔틀 버스 타고 멀리 나가 봤으면 구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알다시피 우리는 '호텔콕' 족이었다. 모기향 대신 모기기피제를 잔뜩 뿌리고 모기가 가장 극성스러운 방에 어른들이 가서 자는 것으로 해결했다. 기피제 효과였는지 확실히 아이들 피가 모기에게 더 맛있었는지 어른들은 아이들만큼 심하게 물리지는 앟았다. 아이들이 모기 공격에 훨씬 더 취약했다.

마지막밤호텔앞엄마송하

여행 마지막 밤은 언제나 아쉽지만 이번 여행은 다른 때보다 그 아쉬움이 조금 더했다. 아이들 공부 때문에 아마도 당분간은 해외 휴양지에 나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이 사진에서 새삼스럽게 송하가 아주 커 보였다. 물론 신발 굽 높이의 마법이 약간 가미되기 했지만 아이들 옆에 서 있는 아내가 유난히 귀여워 보였다.

마지막밤호텔앞엄마소은

소은이는 가끔 아주 어른스러운 행동을 할 때도 있지만, 사진 찍을 때는 영락 없는 어린애가 되어서 장난 꾸러기 같은 표정을 짓곤 한다. 모기 물려서 입이 저런 건 아니다.

여기서 나도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얼굴이 너무 흉해서 다시 보고 싶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보여주고 싶지도 않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편집자 겸 작가의 특권이다.

이번 여행은 네명이 같이 찍은 사진이 거의 없다. 여기는 가이드도 없고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하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그냥 셀카로만 대충 몇 장 찍고 말았다.

마지막밤호텔앞네사람

게다가 내가 팔이 제일 길다고 나보고 셀카를 자꾸 찍으라는데 그러다 보니 내가 가장 앞에 나오게 된다.

그 결과.... 안 그래도 큰 얼굴이 원근법이 추상 같이 정확하게 적용되는 바람에 더욱 더 적나라하게 강조되는 대참사가 일어나게 된다.

그래도 아쉬워 하시는 팬 여러분을 위해 선물로 하나 준비했다.

이 사진은 귀하게 소은이가 팔을 내밀어 찍은 셀카 사진이다. 이 사진을 보라. 내 얼굴이 그렇게 심하게 크기만 한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원근법이 정말 무섭다.

Day 5 - 귀국 (1월 4일 일요일)

5일차프롤로그

마지막 아침이 밝았고, 송하의 실종 예고와 소은이의 눈물, 아내의 '여기 그냥 살겠다'는 농담 속에서도 우리는 돌아갈 준비를 해야 했다. 프라이빗 풀에서의 차가운 물놀이는 뉴칼레도니아에서의 추웠던 추억을 소환시켰고, 셔틀 버스 안에서는 베트남 전쟁의 상흔과 미스 사이공의 헬기 장면, 디어헌터와 지옥의 묵시록 같은 명작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공항으로 가는 길 내내 푸꾸옥의 유래와 선그룹과 빈그룹의 놀라운 성공 스토리, 베트남 전쟁에서 함께 피 흘렸던 역사와 박항서 감독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인연까지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웠고, 국제선 터미널에서 치킨과 피자로 허기를 달래며 마지막 순간까지 베트남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던 우리는, 결국 비행기에 몸을 실은 채 네 번째 베트남, 그리고 당분간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 소중한 여행을 가슴 깊이 새기며 집으로 향하는 긴 여정에 올랐다.

푸꾸옥과 뉴칼레도니아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송하는 '실종될 예정이니 찾지 말아 달라'고 하고 소은이는 엉엉 울고 아내도 '여기 그냥 살겠다'고 했지만, 돌아갈 준비를 해야 했다.

귀국 항공편이 저녁이나 밤 시간이면 레이트 체크아웃하고 호텔 메인 풀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이번 여행의 귀국 스케쥴은 오후 3시여서 그럴 여유까지는 없었다.

풀빌라입수

일단 아침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아이들은 마지막 시간을 프라이빗 풀에서 보내고 싶어했다. 명색이 풀 빌라인데, 정작 우리가 프라이빗 풀에서 보낸 시간은 도착날 밤 잠깐뿐이었다.

벼르던 숙제를 마지막에라도 해치울 모양이었다.

풀빌라입수2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물이 차가웠다.

푸꾸옥은 동남아하고도 베트남에서 가장 남쪽인데, 1월의 푸꾸옥 날씨는 완전히 한여름은 아니었다.

푸꾸옥이 핫하기도 하지만 기온 때문에 다낭이나 나트랑 대신 선택했지만 여기도 충분치는 않았다.

아내는 한참을 버티다가 언젠가 소은이에게 무심코 한 약속 때문에 할 수 없이 물에 끌려 들어갔고 나도 불굴의 투지로 물에 뛰어 들었다. 머리까지 집어 넣고 멋진 자유형 솜씨를 뽐냈지만 햇볕이 그리웠다. 허장성세를 버리고 구석에 간신히 햇볕 드는 곳을 찾아냈다.

'햇볕이 든 쥐구멍'이 이런 건가? 쥐가 해가 비추는 곳을 찾는 이유가 어둠을 물리칠 빛을 찾기 위헤서일까? 아니면 추운 곳을 피해 따뜻한 곳을 찾기 위해서일까?

작년 1월의 발리 여행 때는 춥다거나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 위도 차이가 얼마인지는 몰라도 적도 부근인 발리와 북위 10도 근방인 푸꾸옥은 확실히 기온 차이가 있었다.

'휴양지에서의 추위'하면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우리 부부는 신혼 여행이 약간 짧았다. 결혼하던 해는 아내가 전문의 수련을 마치고 로컬 병원에 취직한 첫 해였다. 지나고 보니 괜히 그랬다 싶은데, 아무리 신혼여행이라도 출근 첫 해부터 병원을 길게 비우기가 조금 눈치 보여서 가까운 휴양지로 짧게 다녀왔다.

결혼은 3월이었다. 아쉬움을 달래고 싶어서 그해 여름 휴가는 길게 잡고 멀리 갈 장소를 물색했다. 첫 후보지는 단연 하와이였다. 그런데 수개월전부터 여행 준비를 한 게 아니다보니 미국 비자 나오는 시간 계산해보면 시간 여유가 조금 부족했다. 너무 간당간당했다.

뉴칼레도니아

다음 대안으로 떠오른 곳이 뉴칼레도니아였다.

여행사를 하는 친구가 추천해 준 장소였다. 호주에 있는 아주 핫하고 좋은 곳이라기에 솔깃했다. 일본 드라마에 한 번 나온 적이 있어서 유행처럼 일본 사람들에게 꿈의 휴양지로 꼽힌다고 했다.

부푼 꿈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9시간쯤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도착이 얼마 안 남았다는 안내 방송이 나올 무렵이었다. 사람들이 슬금슬금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가방에서 옷을 잔뜩 꺼내 주섬주섬 입는 게 아닌가?

스웨터에 청바지에 후드티까지 등장했다. 뭐지? 한 여름에? 음...여기가 남반구니까 겨울이기는 하지. 그래도 여기는 적도 부근 아닌가? 기분이 싸했다. 우리는 완전히 휴양지 복장이었다. 반바지에 반팔, 아내는 원피스에 블라우스. 여름 휴양지에 긴팔이 왠말인가?.

뉴칼레도니아교회앞

도착해서 내려 보니 완전히 한국의 가을 날씨였다. 늦가을까지는 아니고 10월초쯤 되는 날씨?

허걱.. 이런 날씨에 물에 들어가기는 글렀구나. 아~ 망했다. 가이드에게 물었다. "여기 날씨가 계속 이런가요? 이런 날씨에 물에 들어갈 수는 있나요?"

"네... 그래도 요즘 다른 해보다는 조금 날씨가 따뜻한 편이예요. 물에는 당연히 들어가실 수 있어요. 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처음에 조금 적응 못하실 수도 있는데, 여기서는 이 정도 날씨면 다들 물에 들어가서 잘 놀아요."

뉴칼레도니아카약

쉽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도 해냈다. 처음에 조금 거북스러웠지만 물 속은 오히려 따뜻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처음이 힘들지 한번 시작하니까 제법 할만했다. 그래도 긴 시간 수영하기는 힘들었고, 한 번 나왔다가 들어갈 때마다 어금니를 깨물고 닭살을 쓸어내려야 했다.

뉴칼레도니아스노클링

카약만 탄 게 아니다. 스노클링도 했다.

심지어 우리는 스쿠버 다이빙도 했다. 그 스쿠버 다이빙에서 나는 정말 신비로운 현상을 목격했다.

일생동안 아마 아내는 스쿠버 다이빙을 딱 두 번 했을 것이다. 옷만 착용한 것까지 합치면 세 번인데, 마지막에는 옷만 갈아 입고 물에는 안 들어갔다.

첫번째는 신혼 여행 때였다. 그때는 나도 아내도 스쿠버 다이빙은 처음이었다. 얼떨결에 뭐가 뭔지도 몰랐지만 나는 자유로운 느낌이 아주 좋았다. 아내는 조금 무섭다고 했다.

두번째가 뉴칼레도니아였다. 다이빙 가이드 이름이 '다나까 가오리' 였다. 일본어 의미는 모르겠지만, 한국어 식으로 생각하면 그녀는 마치 잠수부를 할 숙명을 지닌 사람 같았다.

# 다나까 가오리(田中 かおり): 일본어에서 '다나까'는 아주 흔한 성씨이고 ‘가오리(香, かおり)’는 ‘향기’를 뜻하는 아주 보편적인 여성 이름이지만, 한국어로는 바다 생물인 ‘가오리’와 '다 낚는다'는 의미인 '다나까'까지 결합하여 마치 바다와 함께할 운명을 타고난 듯한 인상을 준다. 나는 이 우연한 이름의 일치에서 뉴칼레도니아 바다가 우리 가족에게 보내는 일종의 예시적 신호를 느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내가 거의 해녀로 변신했다.

가이드는 우리를 데리고 일단 바다 한가운로 데리고 나갔다. 거기서 배를 정박시킨 다음 가이드가 한 커플씩 데리고 바닷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두 커플이 참여했고 우리는 두번째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잠시 대기하면서 배 근처에서 스노클링을 하면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나는 물이 너무 깊고 조금 무서워서 옷만 갈아 입고 그냥 앉아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오리발까지 끼고 성큼성큼 내려가더니 물에 첨벙 뛰어 들었다.

다이빙직후

그리고는 거의 무아지경에 빠진 듯이 한참 동안 혼자 스노클링을 했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한참 지나고 난 후에 너무 이상해서 '그 때 도대체 왜 그랬느냐'고 물으니, 그냥 덤덤하게 '재미 있을 것 같아서 그랬지, 왜 그랬겠냐'고 대답했다.

정말 단순히 스쿠버 다이빙이 재미 있어서?

여기서 나의 주술적 혹은 신비주의적 상상력과 태교, 유전 등의 과학 지식이 총동원된다.

첫째, 아내는 그날 이후 한번도 스쿠버 다이빙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기껏 같이 하기로 하고 잠수복까지 갈아 입고는 무섭다고 중간에 포기한 적이 있을 뿐이다.

둘째, 당시 아내는 거의 해녀 수준의 잠수 실력과 적극성을 보였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추호의 두려움이나 망설임도 없었다. 그리고 물 속에서 무아지경에 빠졌다.

셋째, 그 날은 7월 20일경이었고 소은이가 태어난 날은 그 이듬해 4월 초순으로 날수로 계산하면 260일 전후가 된다. 소은이 태명은 뉴칼레도니아 비행기 이름 '칼린'이다.

# 에어칼린(Aircalin)과 칼린(Câlin): 첫째 소은이의 태명은 뉴칼레도니아의 국적 항공사인 ‘에어칼린’의 그 칼린과 같다. 흥미로운 점은 프랑스어 단어 ‘칼린(Câlin)’이 ‘다정한 포옹’ 혹은 ‘애무’를 뜻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훗날 물속에서 아빠에게 애정을 듬뿍 표현하게 될 소은이의 성정과, 뉴칼레도니아 여행 무렵에 시작된 생명의 기운을 절묘하게 연결해 주는 상징적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소은이는 아기 때부터 물에 들어가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고 처음 수영장에 데려 갔을 때 나에게 폭풍 키스를 퍼부었다. 수영장에 가면 몇 시간씩 물 속에서 놀다 나온다.

사이판의소은이와아빠

소은 탄생 이듬해인 2011년 7월 사이판의 바닷가 풍경이다. 나는 소은이가 아빠에게 얼마나 사랑스러운 딸인지 그리고 물속에서 그 사랑이 얼마나 더 증폭되는지를 온몸으로 느꼈다. 소은이의 저 해맑은 표정을 보라.

어떤가? 이쯤 되면 나의 상상력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나머지 자세한 해석은 생략하고 여러분의 날카로운 추론 실력을 믿어 보겠다.

추운 풀빌라 수영 때문에 뉴칼레도니아가 소환되고 신비주의적 상상력까지 동원되었다.

해외 여행을 갈 때는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반드시 사전에 현지의 기후와 날씨 등등에 대한 정보를 점검해야 한다. 특히 날씨와 기후는 그 중 기본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1월에 휴양지 여행을 갈지 모르겠지만 수영장이나 바닷물이 차가운 건 딱 질색이다.

그렇다고 푸꾸옥 날씨가 1월에 여행하기 아주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아내는 5월이나 한여름의 베트남이 너무 무덥다고 베트남에 다시 오는 걸 겁을 내기도 했었다. 나는 약간이라도 추운 기운이 느껴지는 날씨보다는 오히려 그런 쨍쨍한 날씨를 더 좋아한다.

겨울은 뜨뜻미지근한 것보다 머리가 띵할만큼 추운게 차라리 낫고 여름도 우중충 비오고 흐릿한 날씨 보다는 해가 쨍하고 구름 한점 없이 더운게 차라리 낫지 않은가?

주요휴양지위도기온

겨울(1월)에 고려될 수 있는 휴양지 중에서 베트남은 기온면에서는 가장 리스크가 있는 편이다. 일단 위도가 높은 다낭과 나트랑은 확실히 위험하고 푸꾸옥은 같은 위도의 다른 후보지인 괌, 사이판이나 보라카이, 방콕과 비슷한 기온 분포를 보이지만 일단 나는 살짝 추웠다.

평균 기온은 비슷하지만 위도 10도 안쪽인 푸켓과 발리가 조금 더 안전한지 모르겠다. 1월의 발리 여행에서 추위는 전혀 못 느꼈었던 점은 참고할 만하다. 하와이의 1월과 뉴칼레도이나의 8월은 수영보다는 관광에 적합해 보이고, 뉴칼레도니아는 차라리 1월에 가면 한 여름의 휴양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1월의 뉴칼레도니아.. 버켓 리스트다.

푸꾸옥의 유래

짧지만 강렬하게 추웠던 프라이빗 풀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버기를 불렀다.

셔틀 버스를 예약해 두었지만 체크 아웃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촉박해질까봐 조금 여유있게 로비에 도착했다. 그런데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절차가 너무 빨리 끝났다.

머피의 법칙!!. 미리 준비하면 절대 지연되지 않는다. 촉박하게 도착하면 반드시 지연된다.

짐을 맡기고 다시 바닷가를 한바퀴 돌았다. 아쉬워 할까봐 인심 쓰듯 바닷가에 데리고 간건데 정작 아이들도 아내도 바닷가에서 그리 감동하는 기색은 없었다.

햇볕이 뜨거워서 오히려 살짝 짜증이 나는 것 같았다. 필살기로 아이스크림 공격에 돌입했다. 어제 먹은 초콜렛과 코코넛 등등의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수영장 옆 풀바에 앉았다.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 없어지고 나니 또다시 시큰둥해져서 터덜터덜 로비로 되돌아 갔다.

그래도 30분쯤 시간이 남았다. 너무 서둘렀나 싶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여행 중에 비행기 출발과 관련된 스케쥴은 절대 빡빡하게 짜서는 안돼' 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공항셔틀대기로비뒤쪽

호텔 로비 뒤쪽에 편하게 쉴 수 있는 의자가 있었다. 눈치 볼 것 없이 최대한 편안하게 자세를 잡았다.

나는 혼자 인공지능을 뒤져 푸꾸옥의 유래와 개발 이야기 등등을 열심히 찾아 봤다. 이건 시간 때우는데 최고 방책이다.

푸꾸옥은 최근 10년의 본격 개발 이전에는 코코넛 수용소라는 유적지만 덜렁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 코코넛 수용소(Phu Quoc Prison)는 푸꾸옥의 아픈 역사를 상징하는 유적으로, 본래 1940년대 프랑스 식민 정부가 베트남 독립운동가들을 투옥하기 위해 세웠으며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최대 4만 명의 북베트남군 포로를 수용했던 비극적인 현장이다. '코코넛'이라는 명칭은 당시 포로들이 감시를 피해 코코넛 껍질로 땅굴을 파서 탈출을 시도했던 절박한 역사를 담고 있으며, 현재는 당시의 참혹한 실상을 재현한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역사적 공간은 푸꾸옥 남단 바이켐(Khem Beach) 해변에 자리 잡은 뉴월드 리조트 정문에서 차로 약 5분(약 2.5km) 거리에 위치한다.

그러다가 10년쯤 전부터 베트만 정부가 발리나 푸켓 같은 세계적인 관광지를 따라잡겠다는 야심찬 목표로 개발하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푸꾸옥 개발에는 정부 외에도 두 개의 민간 기업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베트남 가면 지겹게 듣게 되는 선 그룹과 빈그룹이다.

선 그룹과 빈그룹은 푸꾸옥 외에도 베트남 전역에서 관광을 이끌고 있다. 푸꾸옥의 경우에는 북부는 빈그룹, 남부는 선그룹이 거의 독점적으로 호텔과 관광시설들을 운영하고 있다.

푸꾸옥관광지도

# 선 그룹과 빈 그룹은 단순히 호텔을 운영하는 수준을 넘어, 특정 지역의 인프라와 테마파크, 상업 지구를 통째로 구축하는 '토탈 관광 생태계' 전략으로 베트남 관광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빈 그룹(Vingroup)은 푸꾸옥 북부에 거대한 테마파크(빈원더스), 사파리, 카지노, 그리고 24시간 잠들지 않는 도시 '그랜드 월드'를 조성해 가족 단위 여행객을 위한 통합 리조트 모델을 완성했다. 반면 선 그룹(Sun Group)은 남부를 중심으로 세계 최장 해상 케이블카, 이탈리아 지중해 마을을 재현한 '선셋 타운' 등 예술성과 럭셔리를 강조한 독보적인 랜드마크를 구축하며 프리미엄 관광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여정지도

흥미롭게도 빈그룹의 창업주 팜 녓 브엉 (Phạm Nhật Vượng)과 선그룹의 레 비엣 람 (Lê Viết Lam)은 모두 러시아로 떠난 국비 유학생 출신이다. 게다가 졸업 후 우크라이나에서 라면 사업으로 성공하였고 그렇게 번 돈을 기반으로 모국 베트남에서 관광 사업의 두 축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비슷한 이력을 보인다.

왜 하필 우크라이나였을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1987년, 베트남 정부는 국가 발전을 이끌 엘리트 양성을 위해 최상위권 수재들을 선발하여 우방국이었던 소련으로 국비 유학을 보냈다. 팜 녓 브엉은 모스크바 지질탐사대학교에서 지질경제학을, 레 비엣 람은 공학을 전공하며 미래의 국가 관료로서의 길을 준비했다.

하지만 이들이 졸업할 무렵인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공무원이 되려던 계획은 무산되었다. 당시 도이머이 정책 초기였던 베트남은 여전히 빈곤했고, 이들은 생존을 위해 베트남인 네트워크가 잘 형성되어 있던 우크라이나로 이주하여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 도이머이(Đổi Mới) 정책은 1986년 베트남 공산당 제6차 대회를 통해 채택된 '쇄신' 혹은 '개혁'이라는 의미의 경제 정책으로, 기존의 경직된 중앙 집권적 계획 경제 체제에서 벗어나 사회주의 지향의 시장 경제 체제를 도입한 역사적 전환점이다.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농업 및 서비스 분야의 사적 소유를 허용하고 대외 개방을 통해 적극적으로 외국 자본을 유치했으며, 이는 베트남이 동남아시아의 경제 강국으로 급성장하는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다.

미비나라면

1993년, 이들은 우크라이나 하르키우(Kharkiv)에서 '테크노콤(Technocom)'을 설립하고 인스턴트 라면 브랜드인 '미비나(Mivina)'를 출시했다.

경제난으로 식량이 부족했던 우크라이나에서 저렴하고 간편한 라면은 시장 점유율 90%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며 이들에게 막대한 자본을 안겨주었다.

이후 레 비엣 람 회장은 독립하여 부동산과 대형 시장 개발로 영역을 넓혔고, 브엉 회장은 2010년 식품 사업을 글로벌 기업 네슬레에 매각하며 베트남 복귀 자금을 마련했다. 2000년대 후반 고국으로 돌아온 두 거물은 동유럽에서 체득한 자본의 논리와 대규모 인프라 구축 경험을 베트남 전역에 쏟아부었다.

다낭바나힐케이블카

선그룹은 2007년 다낭 바나힐 케이블카를 시작으로 남부와 중부를 잇는 랜드마크 프로젝트에 집중했다. 뒤이어 빈그룹은 2010년 나트랑 빈펄 리조트를 필두로 북부와 중부에 거대 관광 생태계를 구축했다.

# 빈그룹과 선그룹은 베트남 전체 5성급 호텔 객실의 약 20% 이상을 점유하며 국가 관광 지도를 양분하고 있다. 빈그룹의 빈펄(Vinpearl)은 나트랑 5성급 객실의 약 40% 이상을 확보해 압도적 생태계를 구축하고, 선그룹은 다낭 테마파크 시장 점유율 1위와 글로벌 하이엔드 브랜드아의 콜라보를 통해 럭셔리 숙박 매출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며 각 지역의 관광 경제를 사실상 견인하고 있다.

라면솥

결국 우크라이나에서 베트남의 국비유학생 출신 청년들이 쥐었던 라면 국자는, 수십 년 뒤 다낭과 나트랑은 물론 푸꾸옥을 포함한 베트남 전역의 관광지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 거대한 동력이 되었다.

단순한 휴양지의 하나로 별 생각 없이 다낭과 나트랑을 방문했고 이제 여기 푸꾸옥까지 오게 됐다. 하지만 그 속에는 소련 해체라는 시대의 격랑 속에서 공무원이라는 꿈 대신 비즈니스라는 야심을 선택한 두 청년의 집념과 투지가 숨어 있었다.

나트랑빈펄케이블카

나트랑의 빈펄 리조트는 진입하기 위해서 아주 긴 케이블카 여행을 해야 했다.

처음 리조트에 진입할 때는 무심코 따라 나섰던 소은이가 새삼 무서웠는지 나중에 외부 식당에 가려고 다시 케이블카를 타려 할 때는 완강하게 버텼다.

결국 해상 보트 같은 것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는데, 왜 갑자기 그렇게 무서워 했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이유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 나트랑의 빈펄 리조트가 위치한 혼째섬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바다 위 3,320m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해상 케이블카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는 에펠탑을 형상화한 7개의 지지탑을 통과하며 약 12~15분 동안 나트랑의 전경을 한눈에 담아내는 상징적인 관문 역할을 한다. 만약 기상 악화로 케이블카 운행이 중단되거나 다른 이동 수단이 필요한 경우에는 전용 선착장에서 24시간 상시 운행되는 스피드보트를 이용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약 7~10분이면 섬 내 각 리조트 선착장에 닿을 수 있어 여행객들에게 효율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바나힐

또다른 베트남 여행지 다낭의 바나힐은 해발 고도가 아주 높은 곳에 있는 테마파크 같은 곳이었다.

덕분에 아주 서늘한 가을 날씨 같은 기온이었다. 한 여름에 더위를 식혀 준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놀이 기구나 기타 시설이 우리 나라 과거의 허접했던 놀이 공원 분위기가 나서 시큰둥했었던 기억이 난다.

# 바나힐(Ba Na Hills)은 해발 1,487m의 고산 지대에 위치한 테마파크로, 과거 프랑스 식민 시절의 휴양지를 재현한 프랑스 마을과 세계 최장 수준인 5,801m의 케이블카, 그리고 거대한 두 손이 황금 다리를 받치고 있는 듯한 독특한 형상의 골든 브릿지가 상징인 선그룹의 핵심 랜드마크이다.

베트남은 이번이 벌써 네번째인데, 빈그룹과 선그룹이 이런 사연을 가지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그리고 어디서 잘못 들었는지 빈펄 리조트가 러시아 사람 소유라고 생각했는데, 아마 창업주가 러시아에 다녀 온 사람이라는 걸 그런 식으로 잘못 들었던 모양이다.

베트남의 거대 자본인 빈그룹과 선그룹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과거 한국 경제를 견인했던 '재벌(Chaebol) 성장사'의 데자뷔가 강렬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베트남 정부는 한국의 국가 주도 경제 발전 모델을 정교하게 벤치마킹하여, 특정 민간 기업에 자원을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경제 성장의 가속도를 높여왔다.

개발 초기, 국가가 '전략적 창 끝'이 될 기업에 파격적인 토지 이용권과 세제 혜택을 몰아주고, 기업은 이를 발판 삼아 대규모 자본을 인프라와 첨단 산업에 투입해 단기간에 국가의 지도를 바꿔놓는 이 방식은, 한국식 '압축 성장'의 성공 방정식을 베트남의 토양에 이식하려는 야심 찬 선택이자 필연적인 경로였을지도 모른다.

# 베트남 정부는 이러한 민간 거대 기업들이 국가 관광 산업의 '전략적 창 끝(Spearhead Economic Sector)'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강력한 육성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정부는 푸꾸옥을 비롯한 주요 거점 지역을 관광 특구로 지정하여 법인세 감면, 장기 토지 임대 등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전략적 투자자' 제도를 운영한다. 특히 정부는 도로와 공항 등 기초 인프라를 지원하고, 민간 기업은 그 위에 세계적 수준의 관광 시설을 짓는 민관 협력 모델을 통해 베트남을 동남아시아 최고의 관광 강국으로 격상시키려는 국가적 의지를 보이고 있다.

메콩강의기적

2026년 현재 베트남은 1인당 GDP 약 4,300~5,000달러 구간에 진입하며 한국의 1980년대 후반(서울 올림픽 전후)과 유사한 폭발적 성장기에 놓여 있다.

국가 주도의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통해 연간 수출액 4,300억 달러를 돌파, 규모 면에서는 한국의 2000년대 중반 수준에 도달했으나 산업 구조적 측면에서는 노동집약적 제조에서 첨단 장치 산업으로 이행하던 우리 경제의 황금기 활력과 맞닿아 있다.

특히 최근 베트남 정부가 제시한 10%대의 야심 찬 성장 목표는 과거 한국이 경험한 ‘한강의 기적’을 ‘메콩강의 기적’으로 재현하려는 의지로 풀이되나, 그 이면에는 자본 독점과 사회적 격차라는 재벌 중심 성장 모델 특유의 구조적 과제가 공존하고 있다.

셔틀 버스 안에서의 회상

로비 뒤에서의 편안한 휴식은 길지 않았다. 셔틀 버스의 출발을 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맡겨 둔 짐을 찾아 싣고 버스에 올랐다. 공항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아이들과 아내는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나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창가로 멍하니 건물을 바라보다가 기억의 심연에 공포스럽게 각인된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어떤 건물 옥상에서 사람들이 헬기에 매달려 필사의 탈출을 하는 현장을 촬영한 영상인데 베트남 전쟁이 공산 세력의 승리로 끝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 영상은 반공을 거의 세뇌 수준으로 강조하던 당시의 상황에서 뉴스와 교육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상영되었고, 나는 볼 때마다 그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반공 의지가 뜨겁게 타올랐다.

Chopper Evacuates U.S. Embassy in Saigon

70년대에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무서워서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고, 금방이라도 북한 괴뢰군이 쳐들어 올까봐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 영상은 1975년 4월 29일, 사이공 함락 직전 전개된 미군의 철수 작전 ‘프리퀀트 윈드(Frequent Wind)’의 순간을 담고 있다. 흔히 미 대사관 옥상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는 CIA 요원들의 숙소였던 '피트먼 아파트(Pittman Apartments)'이며, 에어 아메리카(Air America) 소속의 UH-1 휴이(Huey) 헬리콥터가 좁은 공간에 간신히 스키드를 걸친 채 피난민을 실어 나르는 장면이다.

miss saigon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 본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오페라의 유령'의 첫 장면에서 상들리에가 떨어지는 장면이 유명한 것처럼 '미스 사이공'에서는 저 장면이 유명하다고 한다.

# 뮤지컬 역사상 가장 압도적이고 정교한 무대 메커니즘으로 손꼽히는 '미스 사이공'의 백미이다. 실제 크기에 가까운 UH-1 휴이 헬리콥터 모형이 거대한 엔진음과 강한 바람을 일으키며 하강하여 착륙하는 연출은, 1975년 사이공 함락 당시의 공포와 혼돈을 객석에 그대로 재현한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미군 연인 크리스는 헬기에 오르고, 남겨진 베트남 여인 킴이 절규하며 헤어지는 장면이다.

미스 사이공은 세계 4대 뮤지컬로 불릴만큼 유명한 작품인데, 실제 관람 후에는 뭔가 찜찜했다. 시대를 관통하는 감동을 주는 다른 명작들에 비해, 서양 남성에게 로망을 품은 아시아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설정이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편향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캣츠 등과 함께 카메론 매킨토시가 제작한 '세계 4대 뮤지컬'로 꼽힌다.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베트남 전쟁이라는 현대적 배경으로 옮겨와 각색한 작품으로 20세기 초 일본 게이샤와 미 해군 장교의 비극을 그린 원작의 서사 구조를 빌려와, 미군 병사 크리스와 베트남 여인 킴의 사랑과 희생을 극화했다. 하지만 서구인의 시각에서 아시아를 신비화하거나 수동적인 존재로 타자화하는 오리엔탈리즘이나 신데렐라 컴플렉스가 지배하는 스토리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Lea Salonga - I'd Give My Life for You

물론 미스 사이공은 스토리의 아쉬움을 음악의 아름다움으로 충분히 상쇄할만큼 음악이 멋지다. The movie in my mind, I still believe, I'd give my life for you 등 감동적인 노래도 많고 여주인공역을 맡은 여배우 레아 살롱가(Lea Salonga)가 아주 인상적이다.

# 레아 살롱가는 1989년 18세의 어린 나이로 런던 웨스트엔드 초연 당시 주연으로 발탁된 필리핀 출신의 배우이다. 동양인 최초로 토니상 뮤지컬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I’d Give My Life for You’를 통해 보여준 절절한 가창력은 캐릭터의 비극적 서사를 완성했다는 찬사를 받는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의 ‘A Whole New World’와 「뮬란」의 ‘Reflection’을 부른 자스민과 뮬란의 노래 목소리의 주인공으로도 알려져 있다.

미스 사이공은 아이들과 함께 보지 못했다. 언젠가 같이 보게 되면 아이들이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질지 궁금하다. 작품의 분위기가 우리가 함께 휴가를 보낸 곳과 너무 다르고 이질적이어서, 언젠가 휴가로 다녀온 나라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노틀담 성당을 다녀오고 나서 '노트르담 드 파리' 에 전과 다른 몰입도를 보였던 송하, 몽마르트 언덕에서 '물랑 드 라 갈레트' 를 보고 오르세 미술관에서 그림 속의 장소를 기억해 낸 소은이를 생각해 보면 아이들의 기억력이나 감성을 그렇게 가볍게 재단할 수만은 없다. 한동안 국내 공연을 보지 못했는데 오리지널 팀이 오면 아이들과 꼭 보러 갈 생각이다.

# 세계 4대 뮤지컬 중 가장 늦은 2006년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국 초연을 가진 <미스 사이공>은 이후 2010년과 2011년 등 대규모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을 통해 국내 관객과 만났다. 오리지널 팀 내한은 1989년 웨스트엔드 초연 이후 수십 년간 성사되지 못하다가, 2023년 말에서 2024년 초에 이르러서야 영어로 가창하는 ‘뉴 프로덕션’ 글로벌 투어 팀의 첫 내한 공연이 이루어졌다. 다만 이 공연은 서울과 경기 지역을 제외한 대구와 부산 등 지방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수도권 관객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베트남하면 또 생각나는 것으로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를 뺴놓을 수 없다. 베트남전은 내가 본 영화만해도 아마 수십편이 넘을 만큼 한동안 헐리웃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베트남 전쟁보다 더 많이 영화의 소재로 다루어진 전쟁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베트남전이 비교적 최근에 치뤄진 전쟁이기도 하지만, 1,2차 세계 대전을 통해 불패의 전적을 기록하며 세계 최강대국으로 우뚝 솟은 미국이 역사상 최초로 패배한 전쟁이라 미국인들에게 트라우마처럼 상처가 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 베트남 전쟁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패배한 전쟁'으로 기록되며 미국인들에게 심각한 심리적 타격을 입혔는데, 이를 '베트남 증후군(Vietnam Syndrome)'이라 부른다. 사회학적 연구에 따르면, 이 전쟁은 미국 정부와 군대에 대한 신뢰도를 급격히 하락시켰으며, 이후 수십 년간 미국의 대외 군사 개입에 대한 극도의 신중함과 반대 여론을 형성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베트남 참전 용사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발병률은 약 30%에 달해 이후의 걸프전(약 12%)이나 이라크전(약 11~20%)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으며, 이러한 집단적 고통은 할리우드가 승리보다 '상처와 치유'라는 테마에 집중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인이 되었다. 즉 할리우드는 영웅주의적 오락과 참혹한 실재 사이를 오가며 미국 사회가 가진 ‘베트남 증후군(Vietnam Syndrome)’을 예술적으로 박제하고 치유하는 일종의 집단적 카타르시스 창구로서 기능해 온 것이다..

람보
플라툰
굿모닝베트남

어린 시절 나는 실베스터 스탤론이 뿜어내는 '근육질의 소영웅주의'에 열광하며 '람보'의 환상에 젖어 있었다. 아이들과 나는 람보를 무슨 의인이라도 되는 양 따르고 숭배했다.

그러다 적군의 총탄을 받으며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쓰러지는 일라이어스 상사(Sgt. Elias, Willem Dafoe)의 모습이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올리버 스톤(Oliver Stone) 감독의 작품 플래툰(Platoon)을 보았고,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의 재치 있는 입담과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감미로운 노래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가 인상적이었던 굿모닝 베트남(Good Morning, Vietnam)을 보았다 .

버버검프

이 외에도 영화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o)에서는 포레스트 검프의 절친 버버검프(Bubba Gump)와의 인연이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몇 년 전 라스베가스의 버버검프 식당에서 우리 가족은 포레스트 검프의 영화 장면과 주요 대사들을 만났는데, 이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 나는 아이처럼 기뻤다.

영화는 존레논이나 밥딜런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 같은 실존 인물들을 등장시켜 수많은 역사의 현장에 포레스트 검프가 있었다는 식의 만화적 상상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버버검프도 실제 있는 식당을 영화에 같은 식으로 삽입한 걸로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식당이 만들어졌다.

포레스트버버검프

포레스트는 군대에서 평생의 사업 파트너가 될 버바를 만나 '새우'에 대한 원대한 꿈을 공유하지만, 전쟁의 허망한 포화 속에 버바를 잃고 만다.

나중에 새우잡이를 통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포레스트 검프가 버버 검프의 집에 찾아가 그와 약속한 대로 번 돈의 절반을 나눠 주고 유족들이 기절하는 장면은 웃음이 나면서도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우리는 또 TV에서 머나먼 정글(Tour of Duty)이라는 베트남 전쟁 관련 시리즈물을 접했는데, 오프닝 음악이 아주 멋졌다. 나중에 그 노래가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의 ‘Paint It Black’이라는 걸 알게 됐는데, 노래 자체가 베트남전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머나먼정글

나는 이 시리즈에서 오프닝 뮤직만 기억 나는데 아내는 아주 잘 생긴 배우가 나온다는 사실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역시 사람의 기억력은 선택적이다.

# 1966년 발매된 ‘Paint it Black’은 시타르 연주가 자아내는 음울한 선율을 통해 수렁에 빠진 베트남 전쟁 시기 1960년대의 시대 정신을 상징하는 명곡으로 평가 받는데, 전쟁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나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첫 가사 ' I see a red door and I want it painted black'에 등장하는 ‘붉은 문’이 ‘전쟁(피 흘림)’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붉은 문(전쟁의 피) 을 검게 칠하고 싶다는 표현은 전쟁을 반대하는 의미로 읽힌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나의 영화 관람기는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 메릴 스트립(Meryl Streep)의 신들린 연기에 전율한 디어 헌터(The Deer Hunter)와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의 변신이 충격적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에서 절정을 이뤘다.

디어헌터

디어헌터는 내 인생에서 감명 맏은 영화로 10위안에 들만한 임팩트를 주었지만 다시 보기가 두려운 영화다.

여러가지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지만 나는 사슴 사냥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영화 초반부의 주인공 로버트 드니로는 사슴을 단 한 발(One Shot)에 쓰러뜨리는 것을 철칙으로 삼는 명사수였다.

하지만 전쟁을 겪고 돌아온 후, 다시 선 사냥터에서 사슴을 마주했을 때 그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무심코 사냥을 즐기던 철없는 젊은이들이 참혹한 전쟁을 겪고 나서 생명에 대한 시선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디어헌터러시안룰렛

그러나 영화 디어헌터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역시 러시안 룰렛과 관련된 것들일 것이다.

러시안 룰렛은 영화 중반부에 베트콩에게 포로로 잡혀 있을 때 한 번,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베트남의 도박장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친구를 찾아 같이 떠나자고 애원하는 장면에서 한 번, 이렇게 두 번 나온다.

첫번째 장면이 숨막히는 긴박감을 준다면 두번째 장면은 너무 처절하고 비참해서 고개를 돌리고 싶을 정도였다. 영화 속 장면을 동영상 링크로 연결하는 작업은 고심 끝에 하지 않았다. 무심코 눌렀다가 너무 놀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자제하고 이미지만 첨부했다.

디어헌터는 다른 인상적인 영화들처럼 음악도 아주 감동적이다. 스탠리 마이어스(Stanley Myers)가 작곡한 카바티나(Cavatina)는 존 윌리암스(John Williams)가 연주한 기타 솔로 버전이 영화에 여러번 등장하는데, 영화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준다. 한동안 내 통화 연결음으로 사용되기도 할만큼 나의 최애 연주곡 중 하나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연출한 영화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1979)은 전쟁의 사실적 재현을 넘어,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광기와 본질적인 악(惡)을 탐구한다.

후반부에 커츠 대령이 등장하면서 인간이 어디까지 타락하고 동시에 신격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데 나는 그보다 영화 초반부에서 킬고어 중령이 이끄는 헬기 부대가 바그너의 음악을 틀어놓고 베트남 마을을 무차별 폭격하는 장면이 더 충격적이었다.

지옥의묵시록

# 미 공중기병대는 평화로운 베트남 해안 마을을 향해 헬기 강습을 감행하면서, 기괴하게도 헬기에 장착된 대형 스피커를 통해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웅장한 오페라 곡 ‘발키리의 기행(Ride of the Valkyries)’을 폭음과 함께 송출한다. 장엄하고 비장한 클래식 음악이 전장을 압도하는 가운데, 정작 헬기 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병사들은 마치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하듯 너무나도 무심하고 건조한 표정으로 마을을 초토화시킨다. 킬고어 중령이 내뱉는 'I love the smell of napalm in the morning' (나는 아침의 네이팜탄 냄새가 좋아)는 영화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도 유명한 대사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작품들 말고도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지만 아이들과는 별로 같이 본 영화가 많지 않아서 베트남에 와서도 별로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 전쟁 영화라는 장르가 아이들에게 아직은 조금 어렵고 무서운 장르여서 그럴 것이다.

우리 가족은 같이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너무 어릴 때는 아직 이해 못할 것 같아서 못 봤고, 이제 조금 이해할 만하니까 자신들 만의 선호가 형성되고 전쟁 영화는 당연히 여중생 취향이 아니라서 베트남 전쟁을 다룬 걸작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우리 가족은 주말에 같이 볼 영화 선정도 사다리 타기로 한다. 그런데 내가 당첨되는 경우도 많지 않고, 막상 당첨되어도 넷플릭스나 다른 OTT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같은 얘기도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 생각해보면 뭘 그리 조바심 내나 싶기도 하다.

나중에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찾아 보게 될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화 나눌 기회도 생기겠지. 내가 너무 나이가 들어 버려서 얘기할 기운도 없어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래도 '디어헌터'나 '지옥의 묵시록' 같은 명작들은 꼭 함께 보고 싶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과 좋아하는 작품들을 함께 할 때 느끼는 기쁨은 쉽사리 대체하기 어려운 귀한 행복이다.

집으로 오는 길

공항에 도착했다.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겨서 터덜터덜 수속을 했다. 줄이 제법 길었다. 푸꾸옥 공항은 오토 체크인이 되지 않아서 '사람'과 직접 상대하게 되어 있었다. 역시 '사람'이 편했다. 기계화가 고객에게도 늘 편하기만 한 건 아니다.

출국장으로 향했다. 배가 살짝 고팠는데 줄서서 대기하는 중에 살펴보니 안쪽에 버거킹 로고가 보였다. 반가워서 오랜만에 와퍼를 하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군침을 다셨다.

한참을 기다려서 우리 순서가 왔는데, 직원이 무심한 표정으로 여기는 국내선이니 국제선은 반대 방향으로 가라고 했다. 국제선과 국내선이 함께 있는 공항인데. 인천공항만 생각해서 그랬는지 티케팅을 마치고 사람들 줄 서 있는 곳으로 대충 간 게 문제였다.

푸꾸옥공항출국장

게다가 수속장 위쪽으로 광고판이 크게 붙어 있었고 여기가 어디인지 알리는 표시는 보이지 않았다.

털털 걸어서 반대편 쪽으로 가니 거기도 광고만 요란하고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려주는 내용은 아래에 조그맣게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으이그.. 아무리 돈 버는게 좋지만 본연의 기능을 우선 잘하고 부수적으로 돈 벌 궁리를 해야지, 이건 주객이 완전히 전도된 거였다.

나중에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한번 살펴 봤더니 본연의 임무에 아주 충실하게 안내판이 구성되어 있었다. 별일 아닌데도 잠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도시 인프라는 역시 한국이 최고다.

푸꾸옥공항내식당

국제선 안쪽으로는 버거킹이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꾹 누르고 적당한 식당을 광속으로 탐색했다.

피자에 맥주,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컵 치킨으로 허기를 때웠다. 아이들이 기내식을 안 좋아해서 든든히 먹어두어야 했다. 치킨 하나로는 부족해서 만능 로봇처럼 성실히 치킨 추가 주문 업무를 수행했다.

베트남 여행이 끝나고 있었다. 아마 최소 3~4년 내에는 다시 오기 어려운 곳일 것이다. 아이들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조금 시간 여유가 생기기 전에 휴양지 여행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 후에 시간 여유가 생기면 또 더 욕심을 내서 더 멀리 가고 싶어질 것이고....

그래서 베트남 여행기가 이렇게 길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쓰다 보니 베트남은 다른 휴양지가 있는 나라들 예를 들어 필리핀이나 태국, 인도네시아보다 할 얘기가 참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설악산 여행기의 거의 두배에 가까운 분량이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베트남이 벌써 네번째이고 베트남 전쟁부터 최근에 관심이 생긴 호치민 그리고 러시아 사람들 중심의 서양인 구성 등등에다가 첫날부터 마주친 쓰레기 더미에 수영장에서의 주문 오류 사건까지 에피소드도 많았다.

고엽제

베트남은 우리와 많은 인연을 주고 받은 나라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 나라 역사에서 다른 나라의 전쟁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전쟁이 또 있을까?

그 피해는 당시의 인명 피해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 고엽제 피해 후유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 한국군은 약 32만 명의 병력을 파병하여 그중 5,099명이 전사하였는데, 이는 미군을 제외한 연합군 중 가장 큰 희생 규모다. 또한 파병 인원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15만 명 내외가 고엽제의 치명적인 독소인 다이옥신에 노출되어 당뇨병, 암, 말초신경병증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으며, 본인뿐 아니라 자녀들에게까지 유전적 질환으로 대물림되고 있다. 한편, 최대 파병국이었던 미군은 약 58,200여 명의 전사자를 기록하며 자국 역사상 유례없는 인명 피해를 입었다.

그런 아픈 역사를 뒤로 하고 최근에는 삼성을 위시해서 여러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에 진출해서 베트남 경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삼성베트남

# 2026년 현재 한국은 베트남 내 누적 외국인직접투자(FDI) 1위 국가로서 베트남 경제의 핵심적인 축을 담당하고 있다. 삼성전자, LG, 현대자동차, 효성 등 약 9,000여 개의 우리 기업이 현지에 진출해 있으며, 특히 삼성전자 한 곳의 매출이 베트남 국내총생산(GDP)의 약 10~13%를 차지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한국 기업들은 베트남 전체 수출액의 약 25~35%를 기여하며 베트남을 글로벌 제조 허브로 성장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고, 약 100만 명 이상의 현지 고용을 창출하며 국가 경제 전반에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다.

박항서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 대표팀을 맡아 수십년의 베트남 축구 숙원을 이뤄 '쌀딩크'라 불리며 국민영웅으로 대접 받고 있다는 뉴스도 들은 적이 있다.

# 박항서 감독은 2017년부터 2023년까지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아시아 축구의 변방이었던 베트남을 동남아시아 최강자의 반열에 올려놓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세웠다. 부임 초기 2018년 AFC U-23 아시안컵 준우승이라는 '창저우의 기적'을 시작으로, 같은 해 AFF 스즈키컵(현 아세안컵) 우승, 2019년 아시안컵 8강 진출, 그리고 베트남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2022 카타르 월드컵) 등 금자탑을 쌓았다. 특히 60년 만의 동남아시안(SEA) 게임 금메달 획득과 2회 연속 우승을 통해 '베트남의 국민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의가형제

요즘은 한류가 거의 전세계로 퍼져 있지만 베트남에서의 한류는 아주 일찍부터 대단한 기세였다.

그 원조로 장동건을 꼽는데, 그는 1990년대 후반 드라마 《의가형제》의 폭발적인 인기와 현지인이 선호하는 조각 같은 외모를 바탕으로 한국 콘텐츠가 베트남 시장에 안착하는 결정적인 초석을 다졌다.

이런 이유들로 베트남 인들이 한국인을 전반적으로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고 어쩌면 그게 다낭이나 나트랑을 여행지로 선택하는데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그 인연이 이어져 이번에 푸꾸옥까지 오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코로나와 관련해서 베트남 정부가 한국인을 공항에서 바로 격리하거나 항공기 입항 자체를 거부하기도 하면서 양국 네티즌 간에 감정이 골이 깊어진 사건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 지금은 조금 잠잠해졌지만 온라인상에는 일종의 정서적 앙금이 일부 남아 있는 상태이며, 그 후유증이 과거 전쟁의 역사를 소환하는 단계로까지 확산되기도 한다.

# 코로나19 확산 초기 한국인 여행객을 예고 없이 강제 격리하고 우리 국적기의 착륙을 갑작스럽게 불허하며 회항시킨 사건은 양국 국민 정서에 큰 균열을 일으켰다. 특히 격리 중 제공된 베트남의 국민 음식 '반미'를 일부 한국인이 비하하는 듯한 발언이 현지에 보도되면서 베트남 내 반한 감정이 극도로 고조되었고, 이는 온라인상에서 격렬한 해시태그 전쟁으로 번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모자와 같은 과거사 관련 복장 착용으로 인한 입국 거부나 마찰이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으며, 이는 과거의 정서적 앙금이 양국 간의 민감한 역사적·민족적 자존심 싸움으로 변모하여 여전히 가늘게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행기를 쓰는 도중에 이해찬 전 총리가 베트남에서 사망했다. 급성 심근경색이라는데 73세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그런 일이 생겨 마음이 착잡하다. 몇 년전 방송 출연 모습을 보고 건강이 안 좋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렇게 급작스럽게 명을 달리할 줄은 몰랐다.

아내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 듯한데 나는 고문 후유증의 영향이 아닌가 추측한다. 젊었을 때 고문을 당하거나 심한 옥고를 치른 사람들은 급작스럽게 운명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김근태, 김홍업(김대중의 장남), 신영복, 리영희 등이 모두 그렇게 일찍 사망했다.

물론 90이 넘어서도 정정한 미전향 장기수도 있으니 옥살이가 꼭 명을 재촉하는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골병이 든다고 하나? 고문이나 옥고가 건강에 좋을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 의학계에서는 과거의 고문이나 가혹한 옥고가 노년기 급성 심혈관계 질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신체화'와 '만성 염증 반응'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강력한 물리적 충격과 극도의 심리적 공포는 자율신경계를 비정상적으로 활성화해 혈압과 맥박을 만성적으로 높이며, 이 과정에서 분비되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혈관 내벽에 지속적인 손상을 입혀 죽상동맥경화증을 가속화한다. 특히 좁고 냉한 공간에서의 투옥은 혈액 순환을 방해하고 면역 체계를 교란시켜, 젊은 시절 입은 신체적 대미지가 노년기에 이르러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급성 혈관 사고로 폭발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해찬의 사망 소식에 대해 '빨갱이가 빨갱이 나라에서 죽다니 끝까지 일관성을 지킨다'는 조롱 글을 봤다. 나중의 정치 행보나 교육부 장관으로서의 그의 정책에 대해서 찬반 의견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그들이 젊은 시절 목숨을 바쳐서 독재와 맞써 싸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적어도 고마움 정도는 가지는게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 말이 참 거칠고 얄팍들도 하다.

광장서적

대학 시절 나는 신림동에 있는 광장서적에서 사회과학 서적은 물론이고 교과서나 일반 책들도 많이 샀다.

그곳에서 어쩌면 이해찬을 만났을 수도 있지만 나중에 그 곳이 그렇게 유명해질 곳인 줄은 꿈에도 몰랐고 다른 기억도 전혀 나지 않는다.

# 광장서적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출소한 이해찬이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민주화 운동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1978년 서울대 신림동 고시촌에 설립한 인문사회과학 전문 서점으로, 서점의 이름은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점은 출판사 '돌베개'와 함께 시대의 금서를 유통하며 청년들의 사상적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이후 정계에 입문하며 경영을 넘겼으나, 온라인 시장의 확대와 고시 환경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2013년 35년의 역사를 뒤로한 채 폐업했다.

베트남 여행기가 길어진 이유를 설명하다가 또다시 이야기가 옆길로 새어 나가서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왜 이리 말이 많은지... 이제 정말 이야기를 끝내야 할 시간이다.

이번 여행기는 그동안 크게 티를 내지 않고 조용한 애독자였던 아내가 마감을 며칠째 재촉하고 있다. 불굴의 투지로 열심히 썼지만 벌써 여행을 다녀온지 20일이 훌쩍 지났다. 사진 정리하느라 며칠 보내고 다녀온지 5일 후부터 집필을 시작했으니 보름쯤 된 것 같다.

제공한 사진이 여행기에 채택되면 한 장에 천원씩 주겠다는 별로 교육적이지 못한 홍보 전략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사진 제출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아내 사진과 내 사진을 기반으로 작업했고 제미나이 바나나 프로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이로써 2025년의 여행기 3부작이 모두 끝났다. 셋을 모두 담아 한권으로 출판하려 했는데 아내가 유럽편은 이미 출간했으니 설악산과 푸꾸옥만 따로 출간하라고 했다.

내 생각은 둘 다 할 생각이다. 별권의 맛도 있고 전체 통합본의 맛도 다를 것 같다. 교보 문고에서 가끔 보이는 세익스피어나 헤르만 헷세의 무슨 에디션처럼 나도 멋지게 2025년 소은송하네 가족 여행기라는 이름으로 한번 통합본으로 출간을 해볼 작정이다.

물론 판매는 하지 않는다. 가족 인증만 되면 무료로 제공할 것이다.

출간료는 아내가 주기로 했다. 약간의 충돌은 있겠지만 나를 이 고생 길로 끌고 들어오면서 한 약속이니 반드시 지키리라 믿는다. 고마워요~~

마지막